수거하지 마세요, 쓰레기 아니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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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거하지 마세요, 쓰레기 아니고 작품입니다!

    교동 근처 쓰레기 집하장에 작품 전시
    쓰레기로 만든 작품··· 착각해 분리수거
    경고보다 마음 움직여 지속적 행동 변화

    • 입력 2022.02.18 00:00
    • 수정 2022.02.20 00:25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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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공간공일’ 근처 쓰레기 집하장에 전시된 이재복 작가의 ‘낙화’. (사진=조아서 기자)
    ‘갤러리 공간공일’ 근처 쓰레기 집하장에 전시된 이재복 작가의 ‘낙화’. (사진=조아서 기자)

    작품이 사라졌다. 

    춘천 교동 ‘갤러리 공간공일’ 앞 야외에 설치한 작품 ‘NONZERO-SUM GAME’이 일주일 전 자취를 감췄다. 작품을 만든 이재복 작가는 “예상보다 빨랐을 뿐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사라진 작품 ‘NONZERO-SUM GAME’은 이 작가의 ‘낙화’와 함께 설치된 조형 작품이다. 재료는 투명 페트병과 비닐봉지, 설치된 장소는 주택가 골목길의 한 쓰레기 집하장이다. 환경미화원이 수거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갤러리 주변에는 각종 쓰레기, 폐기물, 음식물과 함께 전시된 작품이 더 있다. 심병화 작가의 ‘교동_알바트로스’,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 이덕용 작가의 ‘좌우로 정렬’이다.

    심병화 작가의 ‘교동_알바트로스’와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가 전시된 교동의 한 쓰레기 집하장. (사진=조아서 기자)
    심병화 작가의 ‘교동_알바트로스’와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가 전시된 교동의 한 쓰레기 집하장. (사진=조아서 기자)

    이들 작품 주변에는 ‘병원균 감염 노출 위험’ ‘쓰레기 불법투기 금지, CCTV 작동’ ‘분리배출 위반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경고문’ ‘STOP’ 등 빨간 글씨로 적힌 문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프로젝트 ‘쓰레기의 품격’은 늘어난 쓰레기 배출량과 배달음식으로 인해 급증한 일회용 쓰레기에 대한 위기의식과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경감심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처벌과 제재를 강조하는 캠페인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캠페인이 행동을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집하장에 쓰레기를 버리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작가들은 프로젝트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작품 설치 후 시민들의 반응을 수집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작품의 분실 사고는 실험적인 시도로 현장성을 살린 대가였다.

     

    이재복 작가의 ‘NONZERO-SUM GAME’이 사라지기 전(왼쪽)과 사라진 후의 모습. (사진=이재복 작가)
    이재복 작가의 ‘NONZERO-SUM GAME’이 사라지기 전(왼쪽)과 사라진 후의 모습. (사진=이재복 작가)

    플라스틱 꽃이 만개한 모양인 이재복 작가의 ‘NONZERO-SUM GAME’은 주재료가 투명 페트병이다. 작품을 해체할 때 100% 분리수거할 수 있도록 연결 지점에는 접착제가 아닌 볼트와 너트를 활용했다. 작품명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더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이 불편을 감수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더 예쁜 꽃, 더 푸르른 하늘, 멋진 고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분실된 채로 전시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전시 후에 재활용할 생각이었지만 전시 도중 빨리 사라질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플라스틱 꽃이 갑자기 사라질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쓰레기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면 진짜 꽃(생화)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심병화 작가의 ‘교동_알바트로스’. (사진=조아서 기자)
    심병화 작가의 ‘교동_알바트로스’. (사진=조아서 기자)

    근처 다른 쓰레기 집하장에 전시된 ‘교동_알바트로스’는 담배꽁초에서 필터와 타다 남은 종이로 새의 모양을 만들었다. 그 중심에는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붙어 있다. 바닷새인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태평양에 형성되면서 먹이로 착각한 쓰레기를 먹고 죽어가고 있다.

    심병화 작가는 “한반도 크기의 8배인 쓰레기 섬은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라며 “이러한 일들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교동이라는 장소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 (사진=조아서 기자)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 (사진=조아서 기자)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는 폐스티로폼 큐브로 만들어졌다. 귀여운 첫인상과 애달픈 메시지로 감정의 동요를 일으켜 지속가능한 행동 변화를 이끌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김 작가는 “기후 변화로 위협 받는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며 “똑같이 지구를 빌려 쓰고 있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고,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덕용 작가의 ‘좌우로 정렬’. (사진=조아서 기자)
    이덕용 작가의 ‘좌우로 정렬’. (사진=조아서 기자)

    이덕용 작가의 ‘좌우로 정렬’은 쓰레기 집하장과 일체가 된 작품이다. 작품은 가로세로 일정한 규칙적인 패턴을 적용해 안부터 차곡차곡 쌓으려는 심리를 유발한다.

    이들은 25일부터 3월 2일까지 작품 제작 취지와 과정, 프로그램 참여 전후의 느낀 점을 담은 영상을 ‘갤러리 공간공일’에서 상영한다. 관람객은 3월 12일까지 갤러리 주변에 설치된 실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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