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졸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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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졸업사진

    • 입력 2022.01.19 00:00
    • 수정 2022.01.19 15:32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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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사진 

                                       마경덕

     

    운동장에 모인 우리들

    층층이 나무의자를 쌓고 줄을 맞추고

    키 작은 나는 맨 앞줄 가운데 앉았다

    얌전히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사진사가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무신을 신었으니

    뒤로 가라고,

    운동화 신은 키 큰 아이를 불러 내 자리에 앉혔다

     

    초등학교 앨범을 펼쳐도

    맨 뒷줄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까치발로 서 있던 부끄러운 그 시간이

    흑백사진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신발론」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외 다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참 부끄러운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나도 누구에겐가 그런 상처를 준 일은 없는가 반문하면서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의 심정적 정서의 대부분은 제일 비참할 때가 누군가로부터 인격적인 모독과 멸시를 당했을 때라고 한다. 

    이 시의 주인공인 어린 학생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얼마나 큰 상처였으면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 이 시를 썼을까! 사뭇 내가 당한 듯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저서 「말테의 수기」에서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했다. 이 시는 작자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정서적 충격의 체험이다. 이 시가 작품으로서의 우월성을 지닌 것은 작자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담담히 그 정서적 상처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 이 시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그 어린 화자로부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말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 같다. 성서의 잠언 10장 13절에도 말의 경계에 대해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슬기로운 사람의 입에서는 지혜가 나오고 미련한 사람의 등에는 채찍이 떨어진다”라고.
     
    올해도 어김없이 졸업 시즌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졸업 기념행사도 못하고 학교마다 비대면 영상으로 졸업식을 한다고 한다. 영상으로라도 담임선생님들은 자기 반 아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호명하며 그 이름 위에 덕담 한 마디씩을 던져 주신다면 학생들은 더없이 큰 용기와 희망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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