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킹소매’로 불린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한 MBC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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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킹소매’로 불린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한 MBC 교훈

    • 입력 2022.01.12 00:00
    • 수정 2022.01.13 00:23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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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지난 1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마지막 회(17회) 시청률이 무려 17.4%를 기록했다. 직전에 편성된 남궁민 주연의 MBC ‘검은 태양’의 최고 시청률도 9.8%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MBC에 문의했더니, 드라마의 이런 시청률은 최근 2~3년 사이 처음 경험한 경사라고 했다.

    MBC는 ‘옷소매’로 드라마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했다. 성공해 본 지 오래되면 패배감에 젖을 수밖에 없다. 한때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MBC는 시청 중심이 OTT 등 뉴미디어로 이동하면서 유독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적자 폭이 커 긴축재정이 불가피했던 MBC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콘텐츠 순서대로 줄여나갔다. 드라마 제작 편수와 제작비 축소, 스포츠국의 분리였다.

    요즘 드라마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제작해야 하는데, 제작비가 적다 보니 좋은 대본을 쓰는 작가와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그러다 만난 ‘옷소매’는 지상파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교훈을 주었다. ‘옷소매’는 시청률 35.5%를 올리며 2007~2008년 MBC에서 방송됐던 ‘이산’과 소재가 정확히 겹친다. 당시 엄기영 MBC 사장은 “사장 취임 후 ‘이산’으로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고 말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산’과는 다른 감성을 끄집어냈다. 정지인 PD가 제작발표회에서도 밝혔듯이 “‘이산’은 대하사극에 정통 사극 느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좀 더 감정선에 집중했다. ‘이산’이 나온 뒤로 새로 발굴된 정조와 의빈 성씨의 이야기가 있어 그것도 추가적으로 살렸다”고 했다.

    갈등 요인도 조금 달라졌다. ‘이산’은 영조 이후 정조가 즉위하자 긴장감이 크게 떨어졌다. 제작진은 이 상황을 욕망의 화신인 홍국영(한상진)이라는 캐릭터로 일정 부분 극복했지만, 정순왕후(김여진)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두 차례나 의금부에 투옥되는 등 고증을 어긴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이병훈 PD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산’에서 반전 효과를 위해 시도한 정순왕후의 쿠데타를 후회하고 있다”며 역사 왜곡 문제를 인정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산(이준호)이 넘어야 할 산은 영조(이덕화)였고, 궁녀 성덕임(이세영)이 넘어야 될 산은 제조상궁 조씨(박지영)가 구축해 놓은 궁녀들의 사조직인 ‘광한궁’이었다.

    특히 궁녀들의 하나회 같은 조직인 ‘광한궁’ 에피소드는 원작 소설에도 없는 정해리 작가의 창작이지만 그럴듯하다. 광한궁을 통해 상궁(제조상궁)이 역대급 빌런으로 등장하며 왕세손 이산(이준호)을 죽이려는 역모까지 일으킨다.

    제조상궁은 모든 궁녀의 수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에 일조한 면이 있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조상궁도 사조직을 가동하게 된다. 비밀 사조직인 광한궁은 궁녀들의 안위를 위해, 어느 순간 힘과 권력에 도취해, 또는 두 가지가 함께 뒤섞여 왕을 갈아치울 정도로 힘이 막강해졌다.

    하지만 덕임은 역모를 알아채고, ‘적이 나타났으니 맞붙어 싸워라’라는 의미의 신호연을 만들어 하늘에 띄워 이산에게 핵심 정보를 제공했다. 이때 덕임의 명대사 “저하는 나라를 지키느라 바쁘고, 저는 저하를 지키느라 바쁘다”가 나왔다. ‘옷소매’는 역사도 지키고, 사랑도 지킨 셈이다.

     

    ‘옷소매’의 또 다른 강점이자 차별점은 상당 부분 궁녀 관점에서 풀어나갔다는 점에 있다. 특히 신분에 따라 선택지가 크게 줄었던 조선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성덕임은 보기 드물게 주체적인 사극 여성 캐릭터다.

    “전하의 후궁이 되면 제 것이 모두 사라집니다. 두 번 다시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제 스스로를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왕 앞에서 청혼 제의를 거절하며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는 지밀나인이라니. 목숨이 두 개가 아니면 하기 힘든 말이다. 이전 궁녀들은 성은(왕과의 합방)을 입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후궁들끼리 왕의 밤을 서로 차지하려는 질투, 투기,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성덕임은 달랐다. 다른 궁녀와 싸우지 않는다. 자신(의 철학)과 싸운다. 이는 궁중 멜로라는 한계 속에서도 봉건적, 유교적, 가부장적인 남녀 관계에서 소신과 철학, 고민과 갈등이라는 관계로의 조심스러운 변화를 의미하며, 사극 로맨스의 진화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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