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외투와 목도리와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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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외투와 목도리와 장갑

    • 입력 2022.01.09 00:00
    • 수정 2022.01.09 09:22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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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춘천은 확실히 서울보다 춥고, 강릉보다는 좀 더 차이 나게 춥습니다. 겨울 평균기온이 서울보다는 2~3도 정도 낮고 강릉보다는 5~6도 정도 낮은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다지 입지 않던 무릎까지 내려오는 오리털, 거위털 외투를 춘천에서는 자주 꺼내 입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보다 두툼한 겨울 외투가 많습니다. 겨울이 되면 서울 집에서 춘천 숙소로 해외 여행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트렁크 하나 가득 겨울옷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다른 사람보다 추위를 더 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향이 강릉이어도 대관령 아래 산간마을에서 태어나 나름대로 어린 시절부터 추위에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겨울이면 긴 외투를 자주 꺼내 입습니다. 남들은 갑갑하다고 잘 두르지 않는 목도리도 춘천에 가져다 놓은 것만도 다섯 개나 됩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겨울 외투가 많고 목도리가 많은 이유가 다른 사람보다 추위를 잘 타서가 아닙니다. 변명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외투 없이 거의 겨울을 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자동차를 운전하고 회사 다니던 때입니다. 회사가 금융기관이다 보니 한여름만 빼고는 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녔습니다. 그게 근무할 때의 정복이자 출퇴근할 때의 복장이었습니다.

    제가 두꺼운 옷을 즐겨 입기 시작하고 또 두꺼운 외투가 많아진 것은 아무래도 자동차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시기에는 옷을 가볍게 입고 다녔는데, 운전에 손을 놓으면서 옷을 두껍게 입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을 하면 사실 가벼운 코트도 운전 복장으로는 영 불편합니다. 코드가 길면 코트 자락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 운전해야 하는데, 이게 운전 복장으로는 마땅찮지요. 양복이나 짧은 패딩 정도의 길이가 적당합니다. 운전하면서 목도리를 하는 것도 갑갑하지요. 그 위에 안전벨트를 하면 이게 이중 벨트와 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만 해도 좀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자동차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거리의 신사와 숙녀들이 겨울이면 거의 다 정장 모직 코트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 시절에서 흔히 말하던 대로 마이카시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벗어던진 것이 정장 모직 코트였던 거지요. 정장 코트를 입고 자동차 뒷좌석에 앉거나 조수석에 앉으면 그래도 덜 불편한데 운전석에 앉으면 영 불편합니다. 또 자동차 안이 훈훈하니 코트를 입지 않고 그저 양복만 입어도 부족할 게 없습니다. 자동차는 집에서 회사로 바로 이동하니 아무리 추운 날도 바깥의 추위를 느낄 사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운전에 손을 놓게 되면 겨울에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거리의 추위입니다. 집에서 역까지 혹은 버스 정류장까지 짧으면 5분에서 10분이고, 조금 길면 10분에서 20분 걸어가야 합니다. 또 차가 올 때까지 정류장과 플랫폼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으면 운전할 때보다 밖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당연히 양복 위에 외투가 필요하지요. 전철과 버스 안도 난방을 하지만 수시로 문은 여닫고 해서 승용차 안 같지 않습니다.

    우리 나이로 쉰 살에 자동차 운전에서 손을 놓았으니 어쩌면 조기에 졸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만이라도 탄소연료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하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운전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듯 자꾸 머릿속으로 소설 속의 인물 생각을 하고, 소설 속 인물들이 엮어 나가는 사건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아 아무래도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조기에 졸업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옷장 안에 다른 계절 옷은 거의 그대로인데 겨울 외투와 목도리가 부쩍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정장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엉덩이를 덮는 두툼한 옷들이 늘어납니다. 장갑도 여러 켤레 가지고 있습니다. 목도리 개수만큼 됩니다. 그런데 장갑이야말로 ‘규중칠우쟁론기’ 속의 골무처럼 우리 손과 가장 가까운 물건이면서도 손에서 가장 놓기 쉬운 물건이기도 합니다. 수시로 꼈다 벗었다 하고 두 짝이다 보니 더 쉽게 잃어버립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아이들 장갑에 끈을 달아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가죽장갑과 털장갑, 손에 끼고도 핸드폰을 할 수 있는 장갑 등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이 겨울이 지나면 그중 어느 한 친구와 어디서 이별했는지도 모르게 또 이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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