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손기주 희곡작가, 창작극 만드는 이유···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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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손기주 희곡작가, 창작극 만드는 이유···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

    춘천 생활과 2030세대 현실 작품에 녹여
    창작극 의미 강조 “연극은 시대와의 대화” 
    지역 연극인 교류의 장 ‘창작극대화’ 창단

    • 입력 2022.01.07 00:01
    • 수정 2022.01.08 00:10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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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주 희곡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손기주 희곡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과정이야 어쨌든 목표에만 도달하면 된다는 의미지만 지역 예술인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흔히 연극 하면 대학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대학로는 걸출한 유명 배우들을 배출했고, 상업연극으로 큰 성과도 냈다. 대한민국에서 정부나 예술계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유일한 곳으로 통한다.

    이렇듯 예술을 한다면 서울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한 연극계에 반기를 든 이가 있다. 서울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 4년 전 춘천으로 온 희곡작가 손기주(37)씨가 그 주인공이다. 손 작가는 배우, 조연출, 작가를 거친 ‘연극인’이다.

    연극을 잠시 접어두고 쉬러 내려온 춘천에서 다시금 연극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격적 귀농 연극 고라니를 죽이는 방법’ 공연 모습. (사진=손기주 작가)
    ‘본격적 귀농 연극 고라니를 죽이는 방법’ 공연 모습. (사진=손기주 작가)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

    그는 지난 2018년 춘천에 왔다. 고민이 많던 시기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고라니가 첫해 수확물을 다 뜯어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몇 달 동안 고라니를 퇴치하는 방법을 찾아봤어요. 어떻게 고라니에게 농작물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죠. 처음엔 화가 났는데 어느 순간 재미있더라고요.”

    희곡 ‘본격적 귀농 연극 고라니를 죽이는 방법’은 그렇게 탄생했다. 실패, 부조리, 나약함을 고라니 탓으로 돌리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성공에 대한 압박, 삶의 두려움을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이 실패와 좌절을 모두 남탓으로 돌리게 된 시대상을 담았다. 

    “결국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대단한 작품을 쓴다 해도 위대한 극작가들 작품만큼 좋은 극은 창작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죠. 그래서 작가는 시대의 기록자로 남아야 해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현재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확보하는 거죠.”

     

    ‘청춘, 다이어트’의 공연 모습. (사진=손기주 작가)
    ‘청춘, 다이어트’ 공연 모습. (사진=손기주 작가)

    ‘청춘, 다이어트’는 ‘이 시대의 청춘들은 자신의 꿈과 최신형 아이폰을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쓰인 ‘인간과 악마의 계약’이라는 익숙한 플롯을 차용하지만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소재가 녹아 있다.

    “오래전부터 자본에 지배된 세상을 소재로 한 희곡을 쓰고 싶었어요. 경험이나 필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외적인 모습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존재와 계약해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원하는 것과 맞바꾼다는 익숙한 플롯이지만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치들을 극에 담았어요.”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두 작품은 공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청춘, 다이어트’는 강원문화재단의 신진예술가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돼 2020년 12월, ‘본격적 귀농 연극 고라니를 죽이는 방법’은 단막 초고를 발표한 후 2년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아트쓰리씨어터 소극장 ZONE’에서 공연됐다.

    ▶프로 연극인 동아리 ‘창작극대화’ 창단

    그는 ‘창작극대화’를 창단한다. 극단과 달리 춘천의 젊은 연극인, 각기 다른 단체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결과물도 만드는 동인제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창작극대화’는 3가지 뜻을 품고 있다. ‘창작극+대화’ ‘창작+극대화’ ‘창작+극+대화’. 그가 연출에 참여한 첫 연극 제목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극작 플랫폼 작두(作,do)’ 멤버들이 낭독극 발표회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손기주 작가)
    ‘극작 플랫폼 작두(作,do)’ 멤버들이 낭독극 발표회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손기주 작가)

    손 작가는 창작극에 방점을 찍었다. 셰익스피어, 괴테, 입센, 체호프 등 세기의 극작가 작품 대신 창작극을 공연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료도 필요 없이 셰익스피어, 체호프의 극을 공연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굳이’ 창작극을 공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 명작가들은 지금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잖아요. 연극은 대화하는 행위와 비슷해요. 배우와 연출가의 대화, 배우와 관객과의 대화도 있지만 시대와의 대화이기도 하죠.”

    ‘창작극대화’는 춘천의 ‘극작 플랫폼 작두(作,do)’를 계승한다. 작두는 2016년 희곡 집필을 위해 결성된 창작 그룹이다. 문화공간 작당(作黨)을 거점으로 희곡작가로서의 성장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숍, 낭독극을 꾸준히 열었다. 지난해 희곡집 ‘이야기가 남긴 것들’ 발간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새롭게 재창단하는 ‘창작극대화’는 작가, 연출가, 배우 등 프로 연극인들이 모인 동아리입니다. 예술인의 가장 큰 목표는 더 밀도 있는 세계를 담는 퀄리티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거잖아요. ‘창작극대화’가 그 교두보가 됐으면 합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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