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정성’과 ‘순종’을 걷어차는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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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정성’과 ‘순종’을 걷어차는 인생론

    • 입력 2021.12.27 00:00
    • 수정 2021.12.27 09:58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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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1. 시어머니가 세 며느리를 앞에 두고 한마디 이르신다. 
    “형제간 우애는 절대 밖에서 생기지 않는다. 안에서 생기니 너희들이 잘해야 한다.”
    신혼인 막내며느리가 형님들을 제치고 해맑게 질문한다.
    “그럼 며느리 들이기 전에는 우애가 아예 없었나요? 왜 그렇게 키우셨어요?”

    #2. 명절을 맞아 10여명의 일가붙이가 모인 시댁. 차례 준비하랴 저녁 준비하랴 정신없는 며느리들을 본 어린 조카가 물었다. “여자들은 하녀야?”
    이에 머쓱해진 시아버지가 눙치느라, “너희들(며느리들)이 들으면 기분이 안 좋겠지만 사실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는 여자를 소나 가축처럼 재산으로 취급한단다”고 ‘농담’을 던졌다.
    워낙 권위적인 경상도 분, 누구도 토를 달 생각을 않는데 역시 막내며느리가 받아친다.
    “아버님, 인도나 파키스탄 사는 꼴을 좀 보세요.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그따위로 대접을 하니 그 모양 그 꼴로 살지요. 아버님은 당연히 그런 분은 아니시지만요···.”

    이는 『곤란할 땐, 옆집 언니』(남수혜 지음, 사이드웨이)의 한 토막입니다. 지은이는 마흔여섯 주부로, 음악을 전공했기에 틈틈이 음악 관련 일을 한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애와 결혼, 시댁 이야기를 담았는데 명랑하고, 신선합니다. 아니다. 소개한 일화 두 편에서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당돌하고 당당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어쩌면 발칙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죠. 

    이를테면 ‘여자가 광어나 도다리도 아니고’란 글은 남자들이 찬양하는 ‘자연 미인’을 그만 찾으라고 비웃습니다. “주름 없는 고운 피부는 밤에 피곤한 눈을 하고는 거실 청소를 하면서 마스크팩을 쓴 결과” 등을 꼽으며 ‘자연산’의 신화를 뒤집죠. 그러면서 ‘자연 미남’ 대신 ‘관리 미남’이라도 좀 구경하고 싶다네요. 임신 6개월 이상 된 배를 하고는 남의 외모에 관해 품평하지 말라고 일갈하면서요.

    집에서 먹으면 집밥이라며 즉석국 등에 대한 폄하를 비판하는가 하면 로봇청소기 등을 ‘반려가전’이라 부릅니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아무렇게나 배를 채우고 화풀이 대상이 되는 나물 비빔밥의 위상을 두고 작가들은 나물을 한 번도 무쳐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고 단언합니다. 주부가 손이 그렇게 많이 가는 나물을 화내면서 비벼 먹는다면 굉장히 부지런한 주부일 거라 꼬집으면서요. 

    그렇다고 글쓴이가 도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시어머니가 친구들과 계를 해서 떠나는 9박 10일 해외여행을 따라가 ‘재롱’을 피기도 하고, 치매 단계에 접어든 시어머니를 돌보는 시아버지를 보며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만이 사랑이더냐’고 깨닫는 속 깊은 며느리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지은이가 시어머니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새댁 시절부터 유지했다는데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질문하기’ ‘내가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무조건 “네”하지 않기’ ‘전화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하기’ 네 가지입니다. 이 정도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젊은이에게 줄 만한 조언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 하나. ‘딸이 있어야 하는 인생은 없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모든 엄마가 딸만이 엄마 마음을 알아준다, 늙을수록 엄마의 친구가 되어준다 등의 이유로 ‘여자는 딸이 있어야지’하는 속설에 대한 반론을 담은 글입니다. 유독 딸에게만 부모를 챙기는 ‘치사랑(내리사랑의 반대)’을 기대하고, 아들에게는 아무 기대가 없으면서 딸에게는 원대한 기대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유에서죠.

    지은이는 ‘서문’에서 “옆집에 친정 언니 같은 이웃이 있으면 좋겠다. 서로 선을 넘지 않고 정말 필요할 때 키다리 아저씨처럼 서로 도울 수 있는 언니, 동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고민이나 살림의 팁을 얻을 수 있는 이웃이 있으면 참 든든할 것이다”란 소망을 담아 썼답니다. 그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것으로 읽힙니다. 적어도 주부라면 후련하거나, 무릎을 치거나, 눈시울을 붉히거나 웃음을 터뜨릴 지혜와 위로를 조근조근 전해주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남편이나 다 큰 자식들의 눈에 띄는 자리에 슬그머니 놓아둘 일입니다. 아니면 친구들에게 권해주기를. 혹 모르죠. 앞으로의 삶 혹은 세상이 조금이나마 명랑해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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