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희망이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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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희망이 올 때

    • 입력 2021.12.22 00:00
    • 수정 2021.12.22 10:09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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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이 올 때

                                        한 명 희

    네가 올 땐 가장
    커다란 신발을 신고 왔으면 좋겠어
    네가 오는 소리를 지쳐 잠든 귀들이
    가장 먼저 들었으면 좋겠어
    네가 올 땐 가장 
    큰 등을 들고 왔으면 좋겠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눈들이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도록
    그 빛이 높고 환했으면 좋겠어

    네가 올 땐 가장
    긴 꼬리를 달고 왔으면 좋겠어
    너무 늦어버린 손들
    나중에라도 달려가
    네 꼬리에 매달릴 수 있도록 
    꼬리가 길고 질겼으면 좋겠어
    쿵쾅쿵쾅 네가 오는 소리에 
    닫혔던 창들이 하나 둘씩 눈 뜨고
    옹이진 마음들 풀어졌으면 좋겠어
    아주 가 버렸던 
    희망이 올 때

    *한명희:1992년 『시와 시학』 등단. 현재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시집 「두 번 쓸쓸한 전화」 「내 몸에 용암이 흘러갔다」 「꽃뱀」 외 다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阿Q정전』의 작자 노신(魯迅)은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라 했다.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다니면서 생겨난 것이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란 희망으로 산다. 오늘 한 끼 밥이 없어도 내일이면 또 다른 길이 열리겠지?라는 희망을 햇덩이처럼 안고 산다. 

    아주 오래전 1970년대 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아침 끼니거리가 없어서 엄마가 끓여 주는 술지게미를 먹고 학교에 왔다. 학생부장 선생은 얼굴이 벌건 학생이 눈에 띄었다. 교탁 앞으로 불려 나온 학생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다. 선생은 아침부터 술 처먹고 학교에 왔느냐며 전후사정도 없이 때렸다. 학생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교무실에 끌려와 꿇어앉은 학생은 그제야 실토를 한다. 엄마가 매일 일일 품팔이로 일을 나가시는데 얼마 전부터 몸이 아파 일을 못 나가셨다고. 끼니거리가 없는 엄마는 오늘은 이거라도 먹고 가라면서 술지게미를 끓여 주셨단다. 시큼털털한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고 학생은 그 말을 하는 내내 울었다.

    그리고는 자퇴하겠다고 뒷말을 남겼다. 때리던 선생은 “그럼 그런 말을 진작 하지 그랬느냐?”며 겸연쩍음을 상쇄하려는 듯 호통으로 얼버무렸다. 그런 사정을 반 친구들 앞에서 말할 수 없었던 그 아이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 학생은 결국 용서를 받고 학교에서 주는 불우이웃돕기 장학금으로 무사히 학교를 마쳤다.

    희망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위 시의 화자도 희망의 긍정적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 “네가 올 땐/커다란 신발을 신고 왔으면 좋겠어” “네가 올 땐/큰 등을 들고 왔으면 좋겠어” 그래야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눈들이/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도록/그 빛이 환했으면 좋겠어”라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총이 내리기를 화자는 희망한다. “네가 올 땐/긴 꼬리를 달고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쿵쾅쿵쾅 네가 오는 소리에/닫혔던 창들이 하나 둘씩 눈 뜨고/옹이진 마음들 풀어졌으면 좋겠어”라고 희망을 환유한다. 희망을 희망하는 긍정적 사고의 미학이다.
     
    정말 우리는 불안하고 초조하게 코로나19라는 역병 속에서 참 힘들고 아프게 두 해를 견디고 있다. 임인년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아니, 판도라 상자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이 활짝 웃음꽃을 띠고 찾아와 주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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