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그날 재판정에서 잡은 두 손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그날 재판정에서 잡은 두 손

    • 입력 2021.11.28 00:00
    • 수정 2021.11.28 11:40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지난 11월 23일 전두환씨가 사망했습니다. 사망 기사와 논평에 ‘전두환 전 대통령’에서부터 ‘독재자 전두환’과 그냥 이런저런 모든 것을 뺀 이름 석자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 대한 호칭도 다양했습니다. 그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검색하니까 그를 설명하고 상징하는 여러 말이 나오는군요.

    경남 합천 출신. 12·12 쿠데타로 권력 장악. 장충체육관 간접선거로 제11대 대통령 당선. 개헌 후 다시 체육관 선거로 제12대 대통령 당선. 언론통폐합. 삼청교육대. 민주화운동 탄압지속. 퇴임 후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 추징금 2205억원. 사면 복권. 2021년 11월 23일 사망.

     저 많은 기록 중에 제가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것은 1996년 8월 죄목도 무시무시하게 반란수괴죄, 국가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였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또 전두환과 노태우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나란히 법정에 세운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재판이었는데 어느 신문사의 부탁으로 일일기자가 되어 취재를 나갔습니다.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기자가 쓰는 기사도 있지만, 이런 세기적 재판에 작가가 법정의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쓰는 방청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제 눈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진이고, 또 하나는 그날 불려 나온 두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재판정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요 재판에 화가들이 방청석에 앉아 사진 대신 피고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지요. 그런데 그날 재판은 이례적으로 사진 촬영을 허용해 전체 언론사를 대표해 몇 사람의 기자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12·12 쿠데타에 직간접적으로 참가한 정치군인 거의 전부가 법정에 불려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불려 나온 사람은 물론 전두환이었습니다. 그는 재판장이 호명하자 3124번의 수형번호가 진하게 찍혀 있는 푸른 죄수복을 입고, 입술을 조금 감쳐물 듯 다물고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법정으로 나왔습니다. 걸어오며 방청석 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어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한여름인데 죄수복 안에 런닝셔츠 대신 목 아랫부분까지 올라오는 흰 티셔츠를 입은 것도 조금 색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다음 불려 나온 사람이 노태우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1042번의 죄수번호가 희미하게 찍힌 푸른 죄수복을 입고, 긴장 속에서도 조금 난감하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한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입장했습니다. 그리곤 먼저 입장한 전두환 오른쪽에 서서 왼손으로 전두환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습니다. 이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날 이들이 법정에 불려 나온 죄목은 반란수괴죄, 내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였지만, 사실상의 시발은 두 사람 다 집권기간 동안 여러 재벌기업 회장들로부터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아 그것을 비자금으로 은닉하고 있던 것이 겉으로 드러나면서였습니다. 노태우의 것이 먼저 드러나 전두환의 것까지 함께 수사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결국엔 세계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성공한 쿠데타를 소급하여 처벌’하는 일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그것으로 두 사람 사이에 묘하고도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요. 저는 그날 재판장에서 노태우가 전두환의 손을 살짝 잡은 것은 함께 법정에 선 쿠데타의 동지로 손을 잡았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명할 길도 기회도 없었던 이 재판의 ‘시발’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때 전두환의 모습은 입장할 때는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너희가 나를 어쩔 거냐는 모습으로 들어왔는데 노태우가 미안함의 제스처로 손을 잡아 오자 그 손을 뿌리칠 수도 없고, 함께 마주 잡을 수도 없어 그냥 손만 내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앉았던 자리는 그들로부터 45도 각도 뒤쪽이었지만, 그때 그 순간을 매우 어색해하는 전두환의 모습이 뒷모습으로도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동지적 악수가 아니라 각본에도 없는 돌발상황이었던 셈이지요.

    이제 두 사람은 저세상에서 다시 손을 잡을 일이 없을까요? 있다면 그때는 어떤 마음과 어떤 모습으로 손을 잡을까요? 사람은 가도 역사는 기록을 남깁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