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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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 입력 2021.11.24 00:00
    • 수정 2021.11.24 12:15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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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이승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뼈아픈 별을 찾아서」 외 다수. 현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 시를 접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솟습니다. 나는 언제 내 어머니의 손톱이나 발톱을 한번 깎아드린 적 있었던가? 손톱, 발톱을 깎아드릴 생각은 아예 한번도 못한 채 어머니의 시간은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 해 달라고 하시는 것도 제때에 제대로 못해 드린 적이 더 많습니다. 때로는 시간이 없어 나중에 해드리겠다고 했던 말도 후회로 밀려옵니다. 그리고 끝내는 그 나중이란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옛 성현의 말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나무가 고요히 머물려 해도 바람 그치지 아니하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 정말 그렇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면서” 그 작고 쪼글쪼글해진,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만 남은” 발을 보면서 어머니의 일생을 가슴 찡하도록 아프게 읽어 내고 있습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었던 어린 아기도 발견하고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여자아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이 가뭄못자리같이/거북이 등같이 딱딱해진 발바닥”을 보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발톱을 깎을 힘조차 없는/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면서” 아들은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슴으로 혈관으로 흐르는 사랑을 통하여 어머니는 아들과 말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잘못하면 다쳐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머리카락을 만집니다. 화자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어머니는 한쪽 팔로 아들의 머리를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 이 세상 거친 바다를 건너오신 “어머니의 된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리 없이 웁니다. 정적이 감도는 아픔의 순간입니다. 어머니의 고달프고 아픈 생이 아들의 곡진한 사랑과 효성의 승화로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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