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메이드 인 파리’ 벌꿀은 왜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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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뒤적뒤적] ‘메이드 인 파리’ 벌꿀은 왜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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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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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00년대 들어 출판시장의 두드러진 흐름 중 하나는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무방한’ 책이 부쩍 늘어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이런 책을 반기기 때문이겠는데 주로 에세이집이나 자기계발서가 이런 형태를 많이 취합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독자의 문해력이 떨어진 탓이라거나, 온라인의 짧은 글에 익숙한 때문이라거나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에는 호흡이 긴 글이 맞지 않아서라는 등 다양한 설명이 나옵니다. 어쨌든 『죄와 벌』 같은 장편 소설의 시대는 저문 듯합니다. 요즘에는 사회과학 서적도 각 장을 10쪽 이내로 잘게 쪼개 구성하는 것이 대세로 보이니까요.

『남의 나라 흑역사』(위민복 지음, 글항아리)도 그런 패스트푸드 같은 책입니다. 365페이지 분량에 66편의 글이 실렸으니 평균 5쪽 미만의 글들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남의 나라’는 유럽입니다. 단 ‘흑역사’란 어구에 구애될 건 없습니다. 감춰야 할 진지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화를 소개하는데 그것도 굳이 ‘역사’라 하기엔 좀 그런, 20세기 이후 ‘현대’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지역별로 묶이긴 했지만 어디부터 읽든 무방합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이 책 재미있습니다. 구 동독에서 만들었던 서부영화 ‘소시지 웨스턴’,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 작가의 실종사건, 구 소련의 소설 『삼총사』 붐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져 술술 읽힙니다. 

독일 편에 ‘브라운 베이비(Brown Baby)’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서독에 주둔했던 미군과 독일 여성들 사이에 성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점령군과 패전국 여성 사이라니 상상은 갈 겁니다. 선의로 사귀기도 하고, 몸도 팔고, 강간도 하고···. 이 중 흑인 병사들의 피를 이은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브라운 베이비’였습니다. 피부 색깔 때문이었죠. 1945년부터 1968년까지 7000여명의 흑인 혼혈아가 태어났는데 1952년 독일 연방의회는 기가 막힌 결정을 합니다. 전쟁 직후 태어나 취학연령에 이른 혼혈아들을 미국 등지에 해외입양시키기로, 그러니까 독일 사회에서 축출하기로 했던 겁니다. 입양된 이들의 기구한 뒷이야기도 실렸는데 이를 보면 우리나라나 선진국이라는 독일·미국이나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흑역사’가 있는가 하면 티라미수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이나 프랑스 파리에서 벌꿀을 만든다는 ‘달콤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티라미수는 1960년대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트레비소에 있는 한 식당에서 탄생했답니다. 식당 안주인이 ‘작으면서도 큰’-이게 무슨 소린지-디저트를 만들어보라는 분부를 내리자 요리사 로베르토 ‘롤리’ 링구아노토가 커피에 비스킷을 녹이고 계란 노른자와 비스킷 가루 등을 섞어 층층이 쌓은, 입에서 살살 녹는 티라미수를 개발했다는 거죠. 처음에는 베네토 사투리로 기운을 북돋운다는 뜻의 ‘티라메수’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표준 이탈리아어화해서 ‘티라미수’가 됐답니다.

‘메이드 인 파리’ 벌꿀은 한 괴짜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하던 장 폭통이란 이가 1981년 도심의 자기 아파트에서 벌집을 분양받아 꿀을 생산하려 했다죠. 당연히 이웃들 반응이 좋지 않아 고민하던 중 아예 오페라 가르니에 옥상에 벌집을 두면 되겠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거부 당했지만 옥상에서 생산된 꿀을 극장의 기념품 가게에서 팔 수 있다고 설득해 ‘오페라 벌꿀’이 시작되었답니다.

우스운 것이 파리 시내엔 공원도 많고 아파트마다 다양한 꽃이 가득한 데다 농약도 치지 않아 품질이 우수하다네요. 덕분에 현재 파리 시내 700여 채의 옥상에 벌집이 설치되어 있고, 파리산 벌꿀은 부동산 가치를 반영한 때문인지 농촌에서 생산되는 고급 벌꿀값의 1.5~3배에 달하는 고가에 팔린답니다. 

책의 지은이는 외교관 출신으로 “스포츠를 제외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만물박사입니다. 비영어권 자료까지 섭렵해가며 ‘시시콜콜 유럽 민낯’ 또는 ‘유럽 잡학사전’이라 할 이 책을 썼습니다. 책이란 무릇 재미있든지 유익하든지 해야 합니다. 이 책, 적어도 재미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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