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상 갈등 일단 봉합…불씨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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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문학상 갈등 일단 봉합…불씨는 여전

    • 입력 2021.10.11 00:02
    • 수정 2021.10.12 17:50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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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동상.
    김유정문학촌 내 김유정 선생 동상. (사진=박지영 기자)

    지하의 김유정(1908~1937) 소설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유정문학상을 누가 주최할지를 놓고 다투던 김유정문학촌과 김유정기념사업회가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길을 가는 선에서 봉합을 했다. 김유정기념사업회는 7일 예정대로 제15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권여선 ‘기억의 왈츠’)을 발표했고, 김유정문학촌도 신설한 제1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으로 김유담 소설가의 ‘안(安)’을 선정했다고 같은 날 공개했다.

    이로써 ‘김유정문학상’이라는 똑같은 명칭의 상을 두 곳에서 동시에 수여하는 최악의 사태는 일단 피했다. 수상 후보·후보작에 제한을 두지 않는 김유정문학상과 달리 신설된 김유정작가상은 등단 15년 미만의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이 대상이다. ‘한 김유정 두 문학상’이긴 하지만 상의 내용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 것이다. 문학촌과 기념사업회도 고 김유정 작가의 업적과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자는 인식만큼은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가 다 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의 경우 연초 김유정문학촌의 위탁운영 주체가 춘천문화재단으로 바뀐 후 제14회 김유정문학상 주최권을 놓고 문학촌·기념사업회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2010년에서 2019년까지 문학촌을 위탁 운영하며 김유정문학상도 진행해왔던 기념사업회는 문학촌 운영에서 손을 뗀 뒤에도 ‘김유정문학상은 기념사업회의 고유사업’이라며 공모·시상을 강행했다. 문학촌을 이에 반발했고 춘천시도 관련 조례안을 마련하는 등 문학촌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지난해 5월엔 기념사업회 측을 옹호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김유정문학상지키기 시민운동본부’까지 만들어졌다. 

    기념사업회 측이 지난해 9월 정지아 소설가를 제14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발표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문학촌 측은 이에 맞서 “제14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념사업회 측 수상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도 김유정문학촌 홈페이지의 김유정문학상 소개란에는 지난해 제14회 김유정문학상에 대해 ‘수상자 없음’으로 기재돼 있다.

    올해 제15회 김유정문학상을 둘러싼 양측의 줄다리기는 지난해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불똥은 문학상 상금으로도 번졌다. 2019년까지 김유정문학상 상금(3000만원)을 후원해오던 한국수력원자력(한강수력본부)은 문학촌·기념사업회 간 대립이 격화되자 지난해 공익성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한수원 입장에서는 굳이 예산을 들여가며 갈등에 휘말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지난해 김유정문학상 상금 3000만원을 문학계 인사들의 기부금, 시민성금 등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올해는 상금을 1000만원으로 축소했으나 이 돈을 마련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김유정문학촌이 신설한 김유정작가상의 상금(3000만원)은 춘천시 예산, 즉 세금으로 충당된다. 춘천시의 ‘김유정문학촌 운영 및 관리 조례’ 제3조 ‘문학촌의 업무 및 기능’에 규정된 ‘김유정 선양사업 및 문학 관련 시상 사업’에 따른 것이다.

    김유정문학상, 김유정작가상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데 대해 김유정기념사업회의 김금분 이사장은 “상의 정통성을 지키게 돼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김유정문학촌 관계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양보했고, ‘영원한 청년 김유정’의 의미를 살려 새로운 상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갈등 해결이 아닌 봉합이며, 서로 상처를 입은 것도 분명하다. 지하의 김유정 작가도 못내 씁쓸한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을까.

    ◆문학상 파문과 시비, 어떤 일이 있었나

    하마터면 같은 이름의 문학상 두 개가 동시에 주어질 뻔한 김유정문학상 운영주체 갈등은 꽤 특이한 경우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문학상 주최권 다툼이라기보다 2018년 시장선거에서 1995년 지방선거 실시 이래 처음으로 진보진영 후보(이재수 현 시장)가 당선된 이후 시작된 보수·진보 간 힘겨루기를 원인(遠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유명 작가의 이름을 건 문학상을 두고 벌어진 파문은 보통 친일, 표절 논란이나 저작권, 응모자격 시비에서 비롯됐다. 논란 끝에 주최 측에서 상 자체를 폐지한 경우도 여럿이다. 수상자나 수상 후보 작가가 상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논란들을 유형별로 짚어보았다.

    ▶친일 시비

    동인문학상은 1955년 ‘사상계’지(誌)가 제정했다가 휴지기를 거쳐 조선일보가 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상이 기리는 김동인(1900~1951) 소설가의 친일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2001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른 공선옥 소설가는 후보가 되길 거부했다. 

    시 작품이 대상인 미당문학상은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이름을 따 2001년 제정됐다. 고 서정주 시인의 친일, 독재(5공화국) 옹호 작품 때문에 반대론자들의 비판을 받다가 2018년 상이 폐지됐다. 중앙일보가 미당문학상과 함께 운영하던 황순원문학상도 같은 해 함께 없어졌다.

    전북 군산시가 2002년 채만식(1902~1950) 소설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정한 채만식문학상 역시 채 작가의 친일행위 논란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5년에 수상자를 내지 못한 데 이어 2019년부터도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동서문화사가 2016년 만든 춘원문학상과 육당학술상 역시 춘원 이광수(1892~1950),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1990년 제정된 팔봉비평문학상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근대비평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팔봉 김기진(1903~1985)이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등에서 상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1998년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수상을 거부했다.

    ▶저작권

    출판가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이상문학상은 국내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로 꼽혀왔다. 지난해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통보받은 김금희 소설가는 수상자의 작품을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의 단편집에 표제작으로 실을 수도 없다는 문학사상사의 계약조건에 반발, 상을 거부했다. 이기호, 최은영 작가도 일종의 ‘저작권 갑질’에 반발해 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사상사는 바로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작가에게 불리한 저작권 조항을 바로잡고 2020년 수상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이후 올해엔 수상자(이승우 소설가)를 배출했다.

    ▶표절

    2018년 단편소설 ‘뿌리’로 백마문화상을 받은 김민정 작가가 올해 1월 ‘손모씨가 내 작품을 베껴 작년에 무려 5개의 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손모씨는 김 작가의 작품을 표절해 사계김장생문학상, 2020 포천38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등에서 수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뿐 아니라 인터넷의 자료를 베껴 특허청장상을 받고 노래가사도 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국회에서 “전국 문학공모전의 실태를 조사해 저작권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응모자격 제한

    오장환(1918~1951) 시인의 출신지인 충북 보은군은 2008년부터 오장환문학상을 운영해왔다. 문학상 수상자는 물론 심사위원들도 거의 보은 아닌 ‘외지인’들이 차지하고 지역 문인들이 ‘소외’되자 보은군은 올해 7월 ‘오장환 문학상 운영조례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역풍이 거셌다. 

    새 조례안은 문학상 응모자격을 ‘보은군 내 1년 이상 거주자 또는 출향인사’로 제한했다. 심사위원도 운영위원장인 보은군수가 충청권 문학계 인사들 가운데서 위촉하도록 규정했다. 오장환 문학제·문학상에 매년 1억원 가량 예산을 쓰는데도 수상자·심사위원으로 외지인들만 덕(?)을 본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지역 내에서조차 “문학상을 동네 백일장으로 전락시키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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