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돌 한글 지킴이] 하. “한글은 우리의 정체성”··· 목향 정광옥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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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5돌 한글 지킴이] 하. “한글은 우리의 정체성”··· 목향 정광옥 서예가

    조형미·균형감의 조화··· 한글의 예술적 가치
    민족의 얼과 혼이 깃든 한글, 역사의 산물
    한글 수출, 한국 넘어 전 세계를 향해 나가

    • 입력 2021.10.10 00:01
    • 수정 2021.10.25 13:48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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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5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 수호에 앞장선 춘천 인물을 소개하고 한글의 소중함과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575돌 한글날을 기념하며 '한글날'을 쓴 정광옥 서예가. (사진=조아서 기자)
    575돌 한글날을 기념하며 '한글날'을 쓴 정광옥 서예가. (사진=조아서 기자)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훈민정음)은 발성 기관의 모습을 본떠 만든 자음(초성) 17자와 하늘·땅·사람(천지인)을 표현한 모음(중성) 11자 즉, 그림의 조합이다.

    한글을 기능적 수단이 아닌 예술적 목적으로 바라보면 네모, 세모, 동그라미 등 도형과 직선·곡선이 교차하는 선형의 조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목향 정광옥(63) 서예가는 한글에 담긴 미학적 가치와 인문학적 가치를 회화적으로 풀어낸 예술가다. 그가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을 그을 때마다 먹·종이·글자는 그 이상의 의미로 새롭게 되살아난다. 다채로운 색감 없이도 형태 자체의 표현력이 새삼 재인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목향(木鄕)’이라는 그의 아호를 풀이하면 ‘고향의 나무’다. 물을 주고, 다듬고,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는 자연 속 나무라는 의미다. 갖은 풍파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크는 모습은 마치 한글과도 닮아 있다.

    ▶한 폭의 그림··· 한글, 예술로 승화

     

    정광옥 서예가는 잊혀져 가는 궁체 정자를 고집하며 한글 서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광옥 서예가는 잊혀져 가는 궁체 정자를 고집하며 한글 서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 서예가가 고집하는 ‘궁체(宮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기 시작하여 발전해 온 전통적 한글 서체로 한글이 지니는 붓글씨로서의 멋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씨체다. 그는 고문보다 현대식으로 해석한 ‘현대 궁체 정자’를 추구해왔다. 창작체가 아닌 궁체만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 고유의 글자체가 사라져 간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는 “최근 궁체를 볼 수 있는 곳은 한글오피스의 글꼴뿐”이라며 “한글 궁체는 자형이 단아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이 뒤따라야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어려움 때문인지 이를 지키는 이들이 더욱 줄어드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늘날 궁체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중심축이 ‘ㅣ, ㅏ, ㅓ’ 등 모음 세로획을 기준으로 글자의 오른쪽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문 서체로 구현한 한글 글씨체는 글자의 중심축이 행의 중앙에 있다.

    이러한 글꼴의 균형은 가독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에 따라 시각적 크기를 인식하는 데 큰 차이를 보인다. 획 끝처리의 날카롭고 뭉툭한 정도와 획의 기울기에 따라 담백한 인상이 달라진다.

    정 서예가는 “궁체를 쓸 때는 호흡과 손의 움직임이 하나가 돼야 한다”며 “기분과 상태에 따라 글씨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글 서예 작업은 마치 마음을 비우는 수양과 같다”고 설명했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 한글

     

    정광옥 서예가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서 전문을 붓글씨로 옮겼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광옥 서예가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서 전문을 붓글씨로 옮겼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 서예가가 대가로 불리는 이유는 글자 하나하나에 글 전체를 담는 섬세한 표현력 때문이다. 비결은 현장에서 영감을 얻는 그의 작업 방식이다. 그는 옮기고자 하는 글에 등장하거나 기원이 되는 장소를 현장 답사하며 글쓴이가 글을 쓰게 된 배경과 그의 환경, 그의 마음가짐을 보고 느끼는 과정을 실천한다.

    정 서예가는 2019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독립선언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2·8독립선언서를 작업하기 전 중국 뤼순 감옥을 찾았다. 뤼순 감옥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생을 마감했던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곳으로 안 의사의 유골이 이곳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작업을 시작하면 8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몰두하는 정 서예가는 약 6개월 이상 이어지는 작업으로 인해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고난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하얼빈과 뤼순 감옥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생을 기리며 느꼈던 뜨거운 감정이 붓을 들 때마다 되살아나 그를 채찍질했다. 그는 한자와 한글로 된 원문을 혼서체로 쓰지 않고 한글로 옮겨 완성했다.

    그는 “5500자 분량의 글을 10번 이상 반복하며 최상의 작품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며 “독립선언서를 쓰며 느꼈을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지우고 비우는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광옥 서예가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강원도청 앞에서 자신이 한글로 옮겨적은 독립선언문 1000장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광옥 서예가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강원도청 앞에서 자신이 한글로 옮겨적은 독립선언문 1000장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그는 1919년 3·1운동과 독립선언서 낭독이 이뤄진 파고다(탑골) 공원을 재현하기 위해 강원도청 앞에서 자신이 한글로 작성한 독립선언서 1000장을 배포하면서 100년 전 당시를 재현했다. 

    그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부녀자들도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격문적인 선언서로 총 1335자가 순 한글로 쓰였다”며 “한글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문자로 대한민국과 역사를 함께했기 때문에 한글 서예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강조했다.

    ▶한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정 서예가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한글 서예로 관람객과 교감할 때다. 한자 서예와 달리 한글 서예는 장벽이 낮고 글의 의미도 이해하기 쉬워 관람객과의 소통이 자유롭다. 그는 누구나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한글 서예의 매력으로 꼽았다.

    정 서예가는 “혼자만 보고, 혼자만 이해하는 예술을 하고 싶지 않았다”며 “전시를 통해 작품으로 소통하려면 글로 전하고 싶은 의미와 글자로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광옥 서예가가 디자인한 한글문화관광상품. (사진=정광옥 서예가)

    정 서예가는 더 많은 사람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2015년부터 서예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한글의 기품과 한국의 정서를 담은 열쇠고리, 거울, 명함집 등 한글 공예품을 제작해 중국, 호주, 태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 수출했다.

    그는 575돌 한글날을 기념하며 봄내길벗서예전을 열 계획이다. 올해로 6회를 맞는 이번 서예전은 정 서예가를 중심으로 매년 10월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정 서예가는 “여러 곡절에도 지금까지 버텨온 한글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면서 “힘이 닿는 한 작품 활동을 놓지 않고 서예가이자 한글 지킴이로서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한글에 민족의 얼과 혼을 불어넣겠다”고 다짐했다. <끝>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목향 정광옥 서예가는 강원여성서예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정광옥 목향한글서예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강원도 춘천을 주무대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개인전 15회와 국내외를 오가며 초대 회원전에 540여회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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