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 2인 2색] 상.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 가는 77세 할머니…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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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학도 2인 2색] 상.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 가는 77세 할머니…사연은?

    • 입력 2021.10.10 00:02
    • 수정 2021.10.25 14:09
    • 기자명 남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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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상이고 어쩌면 지루하고 가기 싫은 학교생활이 평생의 꿈인 만학도들이 있다. 이들은 가정형편과 시대적 상황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은발의 시니어다. 춘천의 만학도들을 만나 이들의 사연과 꿈을 들어봤다. <편집자>

    춘천 소양초등학교 희망 반(특수 학급)에는 조금 특별한 학생이 한글과 구구단 등을 배우고 있다. 주인공은 77세(주민등록상 74세)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남궁귀례 할머니다.

    남궁귀례 할머니는 정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서러움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풀기 위해 지난해 소양초교의 문을 두드렸다.

     

    77세 초등학생 남궁귀례 할머니가 수학 곱셈 문제를 풀고 있다. (사진=남주현 기자)
    77세 초등학생 남궁귀례 할머니가 수학 곱셈 문제를 풀고 있다. (사진=남주현 기자)

    할머니의 소양초교 입학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소양초교에서는 처음 할머니의 입학 문의를 받고, 대부분 고령의 학습자들처럼 할머니도 한글 읽고 쓰기를 배우고 싶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학교 측은 할머니에게 성인 문해교실을 추천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문해교실이 아닌 정규 학교 입학을 희망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는 의붓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며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이것이 할머니의 평생 한이 되었다. 할머니는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77세 할머니의 초등학교 입학은 학교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고령에 몸도 불편(시각장애)한 할머니가 초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우려도 컸다. 소양초교 교사들도 할머니께 더 많은 배려와 신경을 써주기에는 다른 학생들이 있어 부담됐다.

    당시 경혜순 교장과 교직원들은 할머니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입학을 위해서는 보증인 선정 등 복잡한 행정절차가 남아 있었지만, 소양초교 교직원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할머니의 노력으로 마침내 지난해 3월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입학에 성공했다.

    경혜순 교장은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으로 할머니의 입학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교장으로서 부담이 가중되는 교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다행히 선생님들이 흔쾌히 할머니의 의지를 존중하고 도와주기로 해 할머니가 입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녹내장 등의 질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왼쪽 눈도 중앙 일부만 보이는 상태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는 소양초 희망 반(특수학급)에 입학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일반 교과서보다 두 배 이상 큰 특수 교과서를 사용한다. (사진=남주현 기자)
    시각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일반 교과서보다 두 배 이상 큰 특수 교과서를 사용한다. (사진=남주현 기자)

    할머니는 소양초교 입학 후 “몸이 불편해 체육 수업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꿈에 그리던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니 평생의 한을 다 푼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학교입학을 위해 큰 수술도 감행했다. 그는 학교 통학을 위해 입학 전 불편한 무릎을 수술했다. 할머니는 고령에 이전 다른 대형 수술 이력도 있어 위험부담이 큰 상황이었지만, 학교입학을 위해 수술과 재활과정을 견뎌냈다.

    할머니는 수학수업을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요즘 배우고 있는 구구단이 가장 재밌다고 한다. 조금 느리고 때때로 틀리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구구단을 외우고 간단한 곱셈 문제를 푸는 일이 즐겁다.

    할머니는 영어도 배우고 싶어 한다. 이유는 아들이 태국인과 결혼해 외국인 며느리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지만, 영어를 배워 며느리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꿈이다.

    올해 초 소양초교는 1년 동안 학교를 충실히 다닌 할머니에게 명예 졸업장 수여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은 고령으로 점차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질 할머니를 배려해서다. 하지만 할머니는 6학년까지 학업을 이어가고 정식으로 졸업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정식 졸업 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졸업장을 들고 어머니의 묘소에 가 “엄마 나 학교 졸업했어”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모친은 남편의 반대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할머니를 학교에 보내주지 못한 일을 평생 한으로 간직했다고 한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이 일을 할머니에게 미안해했다.

    이런 어머니의 묘소에 졸업장을 들고 가 늦게나마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할머니의 소원이다.

     

    남궁귀례 할머니(왼쪽)와 특수반 담당교사 이요한 교사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남주현 기자)
    남궁귀례 할머니(왼쪽)와 특수반 담당교사 이요한 교사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남주현 기자)

    할머니는 초등학교 졸업 후 봉사활동도 참여하고 싶어한다. 봉사활동은 몸이 불편해 거동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을 찾아가 말동무도 하고 친구도 돼 주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는 힘들게 살아왔지만 지금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소원이었던 학교에 다니는 만큼 주변의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MS투데이 취재진을 통해 전달했다. 남편 박경헌(69·우두동)씨는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자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줬다. 또 서류준비 등 입학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해 준 것은 물론 현재 매일 차량을 운전해 할머니의 등·하교를 돕고 있는 후원자다.

    남궁귀례 할머니는 최은혜·이요한 교사 등 지도해주는 선생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며 “잘 돌봐주시고 가르침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남주현 기자 nam01@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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