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우산이 한때 신분의 상징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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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우산이 한때 신분의 상징이었다고?

    • 입력 2021.10.04 00:01
    • 수정 2021.10.05 12:06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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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하늘이 갈수록 높아집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돕니다. 한두 차례 태풍이 닥칠지 모르나 이제 비는 멀어지고, 우산은 깊숙이 들여놓을 때인가 합니다. 이때 『우산의 역사』(매리언 랭킨 지음, 문학수첩)를 만났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당연하다 여겨 무심코 넘기는 사물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터라 기꺼이 책을 펼쳤습니다.

    영국의 작가가 쓴 이 책의 원제는 ‘일상생활과 문학에서 우산의 역사’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본격적인(?) 역사책은 아닙니다. 시대별 혹은 나라별로 우산의 발명, 기능, 변천 등을 전거를 들어가며 체계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대신 ‘차별화의 징표’ ‘손잡이 달린 모자’ ‘잊힌 사물과 끔찍한 윤리’ 등 소주제에 맞춰 산책하듯 우산에 얽힌 역사적 에피소드를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역사보다는 ‘문학’에 크게 기댄 편이어서 읽기 편합니다.

    우선 우산은 유럽에서도 19세기 중반에서야 대중화되었는데 이전에는 극상류층만이 전유하는 ‘사치품’이었답니다. 이건 동양에서 임금이 일산(日傘)이라는 해 가리개를 썼다는 사실에서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어쨌거나 부르주아지와 그 부인들은 노동자 계급과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 혹은 남편의 수입을 자랑하기 위해 우산을 구입했답니다. 오죽하면 19세기 영국 극작가 더글러스 제럴드는 “이 세상에는 바보만이 빌려주거나 빌려준 적이 있는 세 가지 사물이 존재한다··· 바로 책과 우산과 돈이다”라 했을까요.

    “하늘이 비를 내리는 이유, 즉 사람들을 젖게 하려는 의도에 저항”하는 것이라며 “저속한 무리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몸이 젖는 쪽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란 비난에 직면했던 우산은 어쨌든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우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넉넉한 부를 암시한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신뢰감의 상징”이란 대접을 받기에 이릅니다.

    당초 고래수염으로 우산살을 만들던 것에서 진보해 우산의 재료와 상태에 따라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게 되면서 우산은, 그리고 양산은 기상천외할 정도로 화려해졌는데 그 바람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습니다. 영국의 폴로 경기에서는 시작 전에 양산을 숨기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양산의 리본이나 깃털, 밝은색에 말이 겁먹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니 그 다채로움이 어땠는지 짐작이 갑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우산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이 숱하게 등장한다는 점인데 찾아 읽고 싶은 책을 알게 되는 기쁨이 만만치 않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해리 포터』까지 서양 문학작품이 주로 거론되는데 한국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소개될 정도로 다양합니다.

    이 중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의 번잡한 길에서 벌어지는 여성들 간의 ‘전투’를 묘사한 대목이 콕 박혔습니다.

    “우산끼리 서로 부딪혔다. 남자들은 예의 발랐고, 테레자가 지나갈 때면 우산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어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두 정면을 응시한 채 다른 여자들이 자신의 열등함을 알고 옆으로 비켜서기를 기다렸다···.” 비 오는 날 주변에서 종종 보는 장면 아닌가요?

    당연히 우산과 얽힌 엽기적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1978년 불가리아 반체제 작가 게오르기 마르코프가 런던의 워털루 다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살해됩니다. 우산을 든 남자가 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이 목격됐는데 경찰은 독극물이 든 우산 끝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1989년 불가리아의 공산 정부가 무너졌을 때 “작은 화살과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변형된 우산대가 내무부 청사에서 발견되었다”니 설득력 있는 추리라 하겠습니다.

    반면 빅토리아 여왕은 암살 시도를 겪은 후 작은 쇠사슬로 엮어 안을 채운 양산을 소지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11년 1000파운드를 들여 케블러(내열성 섬유)를 입힌 우산을 만들어 경호원들이 들도록 했다죠. 우산의 ‘방어력’을 높이 산 아이디어라 하겠는데 아무튼 경호원들이 그걸로 탁자를 부술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나요.

    누군가는 ‘아는 것이 힘’이라 했지만, 그보다는 아는 만큼 세상 사는 재미가 커진다 하고 싶습니다. 이 책 역시 우산도, 비도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게 되는 재미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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