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양강 '쏘가리 상' 좌대 비밀 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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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소양강 '쏘가리 상' 좌대 비밀 풀리다

    소양강에 남은 일제 상흔 ‘폐교각’··· 기록 발굴
    시멘트 수송용 ‘삭도 지주 기초’ 위치·도면 확인
    당시 언론 “설계 착오로 시멘트 수송엔 실패”
    춘천학연구소 “추후 논문에 어두운 역사 발표”

    • 입력 2021.09.21 00:01
    • 수정 2021.09.23 00:33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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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양강 스카이워크 인근 ‘쏘가리 상’ 아래 조형물을 받치고 있는 좌대(座臺)의 역사적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1940년 전후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건설할 당시 춘천역에서 화천댐까지 건설자재를 운반하던 케이블카 교각의 일부라고만 전해졌을 뿐 별다른 기록이 공개되지 않았다.

     

    소양강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총 3곳 남아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소양강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총 3곳 남아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최근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는 지금껏 베일에 싸여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확한 용도와 이 구조물이 받치고 있던 수송용 케이블카의 본모습을 알 수 있는 문서를 발굴했다.

    춘천학연구소 김헌 학예연구사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1940년 하천부지 점용 허가 관계 문서’를 발굴해 소양강의 ‘삭도 구획 지주 위치 지적도’를 찾아냈다. ‘삭도 중심 하천 횡단 개소 부근 평면도’ ‘지주 구조도’ 등도 찾아내 오랜 기간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의 실체를 알아냈다.

    우선 이 구조물의 정확한 명칭은 ‘삭도 지주 기초’다. 삭도(索道)는 공중에 설치한 강철선에 운반차를 매달아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나르는 장치이고, 지주(支柱)는 어떠한 물건이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어 괴는 기둥이다. 당시 화천댐을 만들 때 춘천역에서 필요한 시멘트를 옮기기 위해 설치한 케이블카를 받치는 기둥의 기초가 된 구조물이라는 의미다. 다리의 다리, 즉 다리를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의 교각(橋脚)보다는 지주 콘크리트 기초(基礎)가 올바른 표현이다.

    소양강에는 쏘가리 상을 받치고 있는 아치 모양 지주 기초(좌대) 외에도 지주 기초가 2곳에 더 있다. 하나는 쏘가리 상을 받친 좌대와 유사한 모양의 아치형, 다른 하나는 기둥 모양이다. 이것들은 춘천역에서 소양2교 다리를 따라 북쪽으로 가는 길에 소양강을 가로질러 직선상에 놓여 있다.

     

    소양강을 가로질러 직선상에 건축된 '삭도 지주 기초'의 모습(사진=네이버 항공샷 갈무리)
    소양강을 가로질러 직선상에 건축된 '삭도 지주 기초'의 모습(사진=네이버 항공샷 갈무리)

    세 지점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춘천역에서 화천댐을 잇는 4개의 구획 중 1구획의 3·4·5번 지주 기초다. 1구획은 춘천시 전평리(현 소양로, 근화동)~신동리(현 신동), 2구획은 신동리~사북면 고성리, 3구획은 고성리~화천군 하남면 석우리(현 삼화리), 4구획은 석우리~간동면 구만리로 지정됐다.

    춘천역에서 화천댐(1~4구획)까지 총 거리는 29㎞였는데, 당시 도로 여건상 40㎞에 달하는 거리를 11㎞나 단축한 셈이다. 29㎞가량 이어진 길에는 목재 지주 222개와 철 지주 6개가 만들어졌다. 지주 기초 위에 세워진 지주는 재료가 철재였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대부분 목재로 밝혀졌다. 

    지주를 바탕으로 설치된 케이블에는 90m 간격으로 640개의 바구니(반기)가 양쪽으로 달렸다. 한 바구니가 춘천역에서 출발해 화천댐을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 8시간 걸렸다. 이 케이블을 이용해 시멘트를 옮기면 1시간에 20톤, 하루에 200톤을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춘천역에서 화천댐까지 이어지는 29㎞ 삭도를 나눈 네 구획 중 1구획의 설계 계획을 알 수 있는 '삭도 제 1구획 지주 위치 지적도’다. '지주 NO3' 위치가 쏘가리 상이 설치된 곳이다. (사진=춘천학연구소)
    춘천역에서 화천댐까지 이어지는 29㎞ 삭도를 나눈 네 구획 중 1구획의 설계 계획을 알 수 있는 '삭도 제 1구획 지주 위치 지적도’다. '지주 NO3' 위치가 쏘가리 상이 설치된 곳이다. (사진=춘천학연구소)

    당시 하천부지 점용 허가 문서(소양강 일대 한정)를 살펴보면 소양강의 지주 공사는 1940년 2월 29일부터 8월 25일까지 약 6개월간 이뤄졌다. 해당 문서에서는 1구획 1번 지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소양강이 아닌 춘천역 인근에 1번 지주를 설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소양강에서는 2번 지주 기초를 볼 수 없다. 2번 지주 기초는 ‘삭도 제 1구획 지주 위치 지적도’와 ‘삭도 중심 하천 횡단 개소 부근 평면도’에 표시돼 있지만 설계도면상 소양강 제방 바로 앞에 2번 지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수면 아래에 있거나 파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번 지주 기초는 쏘가리 상의 좌대로 사용됐다.

    소양강에 지어진 목재 지주 4개(2~5번 지주)를 연결한 거리의 총 길이는 854.4m, 지주가 차지하는 공간은 917평이었다. 연간 점용 요금은 27원 51전으로 기록돼 있다.

     

    1구획 4번 지주 기초와 지주의 정면과 측면 설계도. (사진=춘천학연구소)
    1구획 4번 지주 기초와 지주의 정면과 측면 설계도. (사진=춘천학연구소)

    하지만 이 케이블카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매일신보는 1940년 7월 24일자 신문에서 “빈 바구니로 실시한 시험운행은 성공적이었으나 시멘트를 실었더니 바구니가 바닥까지 닿아 케이블카가 쓸모없어졌다”며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쏘가리 상은 지주 기초가 만들어진 지 46년 후인 지난 2006년에 생겼다. 작품명은 ‘자연의 생명’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물고기의 강인함을 표현해 물의 도시 춘천을 형상화했다.

    일제강점기의 잔해인 콘크리트 구조물(3번 지주 기초)을 활용하는 데 대해 시민들의 찬성 의견을 얻어 쏘가리 상의 좌대로 쓰이게 됐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불쾌한 구조물이 소양강을 대표하는 쏘가리 상의 일부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번에 발굴한 자료는 현재 관광 명소화 사업의 하나로 소양강 상징이 된 쏘가리 상에 담긴 어두운 역사(dark history)와 소양강에 남은 일제의 상흔을 바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헌 학예연구사는 “문건 발굴을 통해 화천댐을 만들기 위한 자재 운반용 케이블의 교각으로 알려졌던 구조물의 형태, 재질, 활용방법 등의 실체가 밝혀졌다”며 “자세한 내용은 논문을 통해 구명(究明)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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