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건강 선물세트’ 걷기··· 건강상 이득만 12개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내 몸 사용설명서] ‘건강 선물세트’ 걷기··· 건강상 이득만 12개

    • 입력 2021.09.17 00:01
    • 수정 2021.09.18 00:02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저는 요즘 걷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습니다. 예전에도 하루 30분 정도는 걸었지만 서울 외곽으로 이사한 뒤에는 시간을 2시간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중독성 때문일까요, 걸은 뒤에는 피곤함보다 오히려 활력과 기쁨으로 재충전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걷기는 요즘 사회운동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걷기 동호회에 너나없이 가입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들은 매일매일 경쟁하듯 걸음 수를 올리며 걷기 열풍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충청도의 ‘걷쥬’와 같은 지자체 앱엔 65세 이상 어르신이 1만5000명 가입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캐시워크’, 삼성화재 ‘애니핏’, OK캐시백 ‘오락’처럼 걸음 수대로 돈을 적립해주는 앱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연예인 사이에선 하정우씨가 ‘걷기 교주’로 불리고 있죠. 하루 3만 보는 보통이고, 10만 보를 기록한 지독한 걷기 마니아랍니다. 일상에서도 도보를 좋아해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8시간 걸어간 적도 있다네요. 그는 이러한 체험담을 에세이 형태로 엮어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내기도 했죠. 그 외에도 배우 김혜수와 고현정, 방송인 김원희, 아나운서 이혜성, 코미디언 홍현희 등 걷기로 건강과 몸매를 유지하는 유명인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걷기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단지 뱃살을 빼거나, 혈당치와 혈압을 안정시키는 효과 이상의 다양한 건강효과를 약속합니다.

    미국의 권위 있는 건강잡지 ‘Prevention(예방)’은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 이익이 12가지나 된다고 강조합니다. 정신적인 면과 신체적 건강효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걸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신경계를 안정시켜 분노와 적대감이 줄고, 우울감도 감소시킵니다. 초록 숲이나 햇빛이 강한 곳에선 효과가 배가 됩니다. 여기에다 친구나 이웃과 같이 걸으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행복감이 충만해집니다.

    걷기가 지능과 창의력을 높인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주 3회 1시간씩 활기차게 걷는 사람은 앉아서 교육을 받는 사람보다 뇌의 의사결정 영역이 더 활성화됩니다. 또 앉아 있는 그룹보다 걷기 그룹이 창의력과 사고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로 빠르게 걸을 때 혈액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수면장애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수면시간을 늘려줄 뿐 아니라 깊은 잠을 유도합니다. 폐경기 여성의 35~60%가 심각한 수면장애를 호소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2019년 ‘Sleep(수면)’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걷기와 같은 적당한 강도의 신체활동을 한 여성은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여성보다 밤에 잠을 더 잘 잔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특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잠을 못 자 뒤척이는 시간이 늘어나고, 수면의 질 역시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이는 뇌에서 수면을 촉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고, 안정을 유도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이랍니다.

    무엇보다 걷기의 건강효과는 에너지 소비와 심혈관계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강도와 체중, 그리고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예컨대 체중 60㎏인 사람이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300㎉가 사용됩니다. 만일 좀 더 칼로리 소모가 필요하다면 언덕길을 택하거나 빠르기로 강도를 높이면 됩니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관리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운동방법입니다. 격하지 않아 스포츠 손상이 없는 것도 장점입니다.

    심혈관계에도 좋은 변화가 옵니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표현하지요. 걸을 때마다 족압이 혈관을 짜내 펌핑하듯 혈액을 심장으로 올려보냅니다. 결과적으로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대퇴부와 종아리 혈관이 망가지는 정맥류도 개선·예방됩니다.

    여기에다 척추와 관절이 튼튼해지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부수효과도 나타납니다. 심지어 안압이 낮아져 녹내장이 개선되고, 림프의 순환을 도와 면역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 매사추세츠대 논문을 보면 걷기가 건강 종합선물세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균 45세 여성 2110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하루 7000보 이상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위험이 50~70%나 낮게 나타났거든요.

    걷기의 장점은 어디서나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엔 지자체들이 걷기 좋은 길을 많이 만들어 어디에 살든 마음만 먹으면 걷기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단, 이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걷기의 단점은 상체 운동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신 건강을 위해서는 걷기를 마친 뒤 덤벨이나 밴드를 이용해 팔과 가슴, 등 근육을 자극해주는 운동을 병행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발을 사랑해야 합니다. 발에는 26개나 되는 크고 작은 뼈, 그리고 114개의 인대와 그 이상의 힘줄, 작은 근육과 신경이 정교하게 얽혀 있습니다. 손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그러니 걷기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스트레칭을, 걷고 난 뒤에는 족부 아치 부분을 중심으로 마사지를 꼼꼼히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걷기를 시작하시는 분은 30분을 목표로 조금씩 시간과 거리, 속도를 늘리세요. 무릎관절 보호를 위해 편한 신발을 준비하시고, 깔창 하나 정도는 더 깔아주는 것이 발을 아끼는 행동입니다. 특히 당뇨병을 앓고 있다면 저혈당을 예상해 반드시 사탕을 준비해야겠지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걷는다는 것은 노동의 일부였습니다. 오죽하면 ‘다리품을 판다’는 말을 했을까요. 하지만 이제 걷는 것은 건강한 생활의 중심입니다.

    바야흐로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문밖으로 나가 보실까요.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