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내 이름은 초롱, 고양이 탐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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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내 이름은 초롱, 고양이 탐정이죠”

    • 입력 2021.08.16 00:01
    • 수정 2023.09.07 11:54
    • 기자명 배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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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8일은 국제동물복지기금에서 정한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귀여운 외모에 도도한 태도, 젤리 같은 발바닥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도 주인처럼 굴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로 칭하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가 증가하는 만큼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고양이는 열린 창문이나 문으로도 나가지만, 앞발로 창문을 직접 열고 나가기도 한다. 이에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등장했다. 이들은 동네를 이 잡듯 뒤져 가출한 고양이들을 찾고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길고양이 급식소에 있는 초롱탐정 윤초희 씨. (사진=배지인 기자)
    길고양이 급식소에 있는 초롱탐정 윤초희 씨. (사진=배지인 기자)

    ▶춘천 유일의 고양이 탐정 ‘초롱탐정’을 만나다
    초롱탐정(본명 윤초희·활동명 초롱탐정)은 7년 차 고양이 탐정이다. 초롱이라는 이름은 기르던 강아지 이름에서 따왔다. 과거 동물에게 큰 관심이 없던 초롱탐정은 강아지 초롱이를 만나면서 동물에 푹 빠지게 됐다. 강아지를 좋아하게 되니 유기견에 눈길이 갔고 길고양이들이 집에 찾아와 강아지 사료를 먹는 것을 보고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고양이 사료를 사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겼다.

    초롱탐정은 전국구 고양이 탐정 ‘옥탐정’의 제자이기도 하다. 마을회관에서 돌보던 고양이의 구조 방법을 찾다 옥탐정을 알게 돼 인연이 됐다. 그 후로도 길고양이 문제가 있으면 옥탐정과 상의했다.

    2015년, 수험생이었던 초롱탐정은 안락사를 앞둔 유기묘와 길고양이들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적었다. 옥탐정을 따라다니며 구조 활동을 보조하던 초롱탐정은 자연스럽게 고양이 탐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1년여간 탐정 보조로 활동했고 2016년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혼자 다녔다. 옥탐정이 의뢰를 받고 초롱탐정에게 의뢰를 넘겨주는 식이다. 구조 성공률은 70~80%에 달한다. 그동안 몇 마리의 고양이를 찾았는지 셀 수도 없다.

    초롱탐정과 옥탐정은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 구조와 돌봄에도 힘쓰고 있다. 케어가 필요한 길고양이들은 옥탐정과 초롱탐정이 춘천에 마련한 고양이 전용 쉼터에 데려다 놓는다. 현재 28마리 고양이가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양이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더 넓고 좋은 환경으로 쉼터를 옮기는 것이 초롱탐정의 목표다. 집에도 11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초롱탐정과 옥탐정이 마련한 고양이 전용 쉼터에서 밥을 먹는 길고양이들. (사진=초롱탐정 제공)
    초롱탐정과 옥탐정이 마련한 고양이 전용 쉼터에서 밥을 먹는 길고양이들. (사진=초롱탐정 제공)
    초롱탐정이 옥탐정, 반려인과 함께 고양이 ‘라라’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초롱탐정 제공)
    초롱탐정이 옥탐정, 반려인과 함께 고양이 ‘라라’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초롱탐정 제공)

    ▶고양이 구조의 열쇠: 꼼꼼함, 침착함, 인내심
    “집에서만 살던 고양이들은 집 밖에 나가면 패닉이 돼서 가까운 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에 숨으려 해요. 그래서 좁은 틈이라도 놓치지 않고 가까운 데부터 이 잡듯이 구석구석 꼼꼼히 봐야 합니다. 고양이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조급해서 울고 당황하는 분들이 있는데, 침착하셔야 해요. 지저분하고 좁은 곳도 다 들어가서 확인해보셔야 해요. 고양이를 발견하면 막 잡으시려는 분들도 있는데 1, 2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긴장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초롱탐정은 고양이를 찾으러 다닐 때 의뢰인과 동행한다. 고양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해 친한 반려인이 계속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직후 빠르게 수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잃어버린 지 너무 오래된 고양이는 찾기 힘들다.

    의뢰는 서울·경기도 쪽이 주가 된다. 춘천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의뢰는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오지만, 춘천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타지로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아 2~3일에 한 건 정도 의뢰를 수행한다.

     

    초롱탐정, 옥탐정, 반려인이 함께 24시 동물병원으로 가 구조된 고양이 ‘라라’의 진료를 맡겼다. (사진=‘고양이탐정TV’ 유튜브 갈무리)
    초롱탐정, 옥탐정, 반려인이 함께 24시 동물병원으로 가 구조된 고양이 ‘라라’의 진료를 맡겼다. (사진=‘고양이탐정TV’ 유튜브 갈무리)

    ▶고양이 구조 현장 생생히 담은 ‘고양이탐정TV’
    길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2019년부터 옥탐정과 함께 유튜브도 시작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해 1~2주 입원시키면 200만원 정도의 병원비가 필요하다. 광고 수익을 통해 이런 병원비, 고양이 사료비 등을 충당해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들의 ‘고양이탐정TV’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과정,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 돌보는 과정, 고양이 쉼터 생활 등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현재 구독자는 13만명에 달한다.

    고양이 탐정, 길고양이 구조 일을 하며 체력적으로 힘든 일도 많다. 최근에는 12시간만에 고양이를 구조했다. 새벽까지 구조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끼니때를 놓치고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쏟아지는 잠과도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마음보다는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 수색 중에 고양이를 사체로 발견했을 때 그 모습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또 의뢰인의 지인이 의뢰인의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인 일도 있었다. 초롱탐정이 추궁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길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도 많이 봤다. 초롱탐정이 놓아둔 길고양이 밥에 나프탈렌과 식초를 뿌려두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기는 의뢰인들이 기뻐하고 감사를 표할 때 초롱탐정은 행복을 느낀다. 아파트 13층에 살다 가족들이 출근하는 사이 몰래 가출한 ‘겨울이’를 구조한 후 의뢰인 할머니가 달걀과 과일을 바리바리 싸주셨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초롱탐정은 “방묘문과 방묘창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방묘문과 방묘창만 있어도 고양이가 집을 나가지 못한다. 또 산책은 금물이다. 산책이 필요한 소수의 고양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양이에게는 위험하다. 밖을 잘 알게 되면 잃어버렸을 때도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나가기 때문에 찾기 힘들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춘천시는 반려동물 동행도시를 선포하고 반려동물 복지와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아닌 길고양이들에게는 꿈 같은 소리다. 초롱탐정은 “춘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이나 고양이 급식소 등 복지사업이 미흡한 편이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민원도 넣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초롱탐정은 “춘천이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해 좋은 사업들은 배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지인 기자 bji0172@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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