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업 진단下] 건물주=부자? ”옛말“ 빈 상가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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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업 진단下] 건물주=부자? ”옛말“ 빈 상가 ‘수두룩’

    춘천 명동 포함 주요 상권 공실 지속 증가
    착한 임대인 운동 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임대료 못 받아 건물 파는 임대인도 잇따라

    • 입력 2021.08.14 00:01
    • 수정 2021.08.23 17:31
    • 기자명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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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명동에 건물을 사면 몇 대가 먹고산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됐어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 이른바 ‘갓물주(건물주를 GOD에 빗댄 합성어)’들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낳은 경기침체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연이은 폐업으로 주요 상권의 상가들이 텅 비면서 춘천지역 임대업자들이 연일 한숨을 쉬고 있다.

    10일 오후 방문한 춘천의 대표적 번화가인 명동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한산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관광객과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북적이던 명동 번화가는 적막감마저 들었다. 과거 상인들이 입주하려고 줄을 섰던 명동의 주요 상가 벽면 곳곳에 붙은 ‘임대 문의’라는 큼지막한 안내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층이 모두 텅 비어 있는 명동 인근 상가들 (사진=정원일 기자)
    한 층이 모두 텅 비어 있는 춘천 명동 인근 상가. (사진=정원일 기자)

    ■공실은 늘고, 소득은 줄고···“임대료 내려도 공실”
    코로나 장기화로 상가의 ‘공실화’가 지속되면서 당장 수입이 끊긴 임대인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MS투데이가 한국 부동산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춘천 명동의 올해 2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8.9%로 1분기(18.5%)에 비해 0.4%P 늘었다. 소규모 상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해 1분기 4.9%였던 명동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분기 8.9%로 껑충 뛰었다. 빈 점포가 1년간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비단 명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가 발발한 지난해 춘천지역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지난해 1분기 11.5%였던 공실률은 2분기 13.9%, 3분기 16.1%, 4분기 16.9%로 계속 높아졌다. 

    상가 내 빈 점포가 급증하면서 상가들의 순영업소득도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기준, 3.3㎡당 6만8000원이던 중대형 상가의 순영업소득은 4분기에는 평당 5만9000원까지 떨어져 1년 만에 13.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인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임대료를 내려도 빈 점포는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춘천지역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3.3㎡당 6만7000원으로 동년 1분기(6만9000원) 대비 3.3㎡당 2000원가량 내려갔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공실률은 지난 한 해 중 가장 높은 16.90%를 기록했다.

     

    2020년 춘천지역 중대형 상가 임대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2020년 춘천지역 중대형 상가 임대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명동에서 임대업을 하는 홍병훈(84) 씨는 “지난해부터 임차인들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로 임대료를 내리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답답하다”며 “임대인, 임차인 중 한쪽만 힘든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건물주=부자’라는 등식이 모든 임대인에게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임대인 중에는 자신의 자산에 은퇴 후 받은 퇴직금,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까지 ‘영끌’해서 건물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장기간의 공실은 이들의 생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대봉 춘천 명동 상인회장은 “많은 임대인이 은행 대출을 끼고 건물을 사는 만큼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한다”며 “주변에 임대료가 2년 가까이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는 건물주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명동에 건물 하나만 있으면 몇 대가 먹고산다는 말도 옛말이 됐다”고 덧붙였다.

    ■착한 임대인 혜택 실효성 의문···못 버티고 건물 파는 임대인도↑
    임대·임차인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정부와 춘천시는 착한 임대인을 대상으로 임대료 인하액 일부를 각종 세금에서 공제, 임대업자들의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임대업자들의 고통이 계속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도에 따르면 지난해 춘천지역의 착한 임대인 세제 혜택 건수는 556건, 감면받은 세액은 총 1억6067만원이다. 1건당 대략 29만원 정도의 세제 혜택을 받은 셈이다. 임대업자들은 임대료를 내려도 임차인들이 나가는 현 상황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다고 하더라도 혜택보단 손실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서 착한 임대인 운동의 ‘상생’ 취지가 사실상 퇴색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강원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용승(27) 씨는 “코로나19로 학교 인근 곳곳에서 빈 상가를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착한 임대인들에게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도 손실이 더 크다면 얼마나 많은 임대업자가 지속해서 참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대출 이자와 관리비용을 버티지 못하고 ‘애물단지’가 된 건물을 끝내 파는 임대인들도 늘고 있다. MS투데이가 종합부동산정보플랫폼 부동산플래닛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춘천 명동 상권의 상업용 빌딩 거래량은 2019년 5건에서 2020년 6건, 그리고 올해는 8월12일 기준 7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춘천의 한 상가 건물 중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다. (사진=정원일 기자)
    춘천의 한 상가 건물 중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다. (사진=정원일 기자)

    이마저도 부동산 업계에서는 ‘팔리면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효자동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이모(48) 씨는 “임대료가 끊겨 건물 자체를 매물로 내놓는 임대인들도 많지만 잘 팔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솔직히 누가 춘천의 상가를 사겠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임대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인 만큼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를 유도하는 것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선의에 기대기보단 임대인을 위한 보다 직접적인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 놓인 해외 각국의 상가 임대차 보호법을 조사한 국회도서관 김명수 전문경력관은 MS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외국의 경우 임대인 보호를 위한 다양한 입법례들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임차인'에 초점을 맞춰왔던 경향이 있다"며 "임대인에게 초점을 맞춘 지원 방안도 고려해야 결과적으로 원만한 임대계약 유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원일 기자 one1@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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