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메밀은 내게 샛별” 박철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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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메밀은 내게 샛별” 박철호 명예교수

    • 입력 2021.08.15 00:01
    • 수정 2023.09.07 11:54
    • 기자명 배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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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국수는 닭갈비와 함께 춘천의 대표 먹거리로 꼽힌다. 막국수의 원료가 되는 메밀은 과거 강원도에서 높은 생산량을 자랑했다. 현재는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농민들도 수익성 때문에 메밀 농사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지역에서 메밀 관련 연구와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박철호(65) ‘박철호 메밀TV’ 대표(강원대학교 명예교수)는 메밀 관련 논문만 50편에 달하는 ‘메밀 박사’이면서 정년퇴임 후에도 유튜브 등을 통해 메밀 사랑을 이어가는 ‘메밀 크리에이터’기도 하다.

     

    퇴임 후에도 ‘메밀하우스’를 열고 메밀 사랑을 이어가는 박철호 대표. (사진=배지인 기자)
    퇴임 후에도 ‘메밀하우스’를 열고 메밀 사랑을 이어가는 박철호 대표. (사진=배지인 기자)

    ▶메밀과의 시원·담백한 인연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초, 중학교를 영월에서 다닌 후 춘천고등학교에 진학, 1974년 강원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했다. 홍천으로 동아리 MT를 떠난 박 대표는 그때 막국수를 처음 맛봤다. 순 메밀이라 젓가락질도 잘 안 돼 숟가락으로 떠먹다시피 했던 첫 막국수에 대한 감상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지?”였다. 이후 대학원에서 막국수 애호가였던 교수를 따라다니며 막국수의 참맛을 서서히 알게 됐다.

    석사과정에서 벼를 주제로 연구했던 박 대표는 강원대에서 옥수수를 연구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다가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강원도는 품질 좋은 메밀이 많이 생산됐고 메밀 식문화도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누군가는 메밀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해보자’고 결심한 박 대표는 메밀 연구가 활성화돼 있던 일본 미야자키대학의 교수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후 한 교수에게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받아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러던 중 강원대와 자매결연을 했던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석사과정 장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석사과정에서 박사과정으로 바꿔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 후 이에 지원해 선발됐다. 좋은 연구 성과를 다수 낸 덕에 박사로 전환 후 학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서는 메밀을 잡초로 취급해 메밀 관련 연구를 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시간강사를 하다 교수가 됐고, 못 이뤘던 메밀 연구의 꿈은 교수가 되고부터 다시 시작했다.

     

    박철호 대표는 2007년 제10회 세계메밀학회 총회에서 공로패를 수여했다. (사진=박철호 대표 제공)
    박철호 대표는 2007년 제10회 세계메밀학회 총회에서 공로패를 수여했다. (사진=박철호 대표 제공)

    ▶메밀 산업 발전 위해 노력, 지원 부족해 아쉬움도
    박철호 대표는 강원도의 메밀연구 기반을 다지기 위한 인프라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때 떠오른 방법이 3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메밀학회를 춘천에 유치시키는 것이었다. 선배 교수 등과 함께 한국메밀연구회를 만들어 준비했고 7회 대회가 열리는 캐나다에 가 춘천 유치를 제안했다. 투표를 통해 호주와 우크라이나를 제치고 2001년 제8회 세계메밀학회를 춘천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제8회 세계메밀학회는 학회 기간을 춘천 막국수축제와 평창 효석문화제와 겹치게 해 학회와 더불어 막국수, 메밀 축제를 경험하게 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박 대표는 세계메밀학회장이 됐다. 박 대표는 “제8회 세계메밀학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메밀과학자로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며 “메밀은 내게 샛별처럼 운명을 이끌어주고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30년간 메밀연구와 산업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박 대표는 춘천 막국수의 명품화, 세계화를 위해 농림부의 향토산업 육성사업의 지원을 받고자 했다. 춘천막국수협의회 등과 협업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지만 춘천시의 결재를 받지 못해 사업에 지원하지 못했다. 또 메밀과학과 인문, 문화를 아우르는 메밀종합교양지 ‘메밀’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역시 지원 부족으로 11호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이처럼 막국수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제안을 해도 관심과 호응이 부족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박 대표는 201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메밀과 관련된 소설이 다수다. 박 대표는 “메밀 관련 소설의 경우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소설을 통해 이루는 것”이라며 “소설을 통해 지역이나 메밀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2019년 출간한 장편소설 '춘천여자, 송혜란'은 메밀 관련 특산품을 개발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 외에도 장편소설 '막국수 연가', 단편소설 모음집 '산토 치엘로'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집필을 이어가며 한국소설협회의 회원으로도 등록된 박 대표는 현재 메밀 동화가 담긴 동화집도 준비 중이다.

     

    박철호 대표는 유튜브에서 메밀에 관한 과학, 식문화, 문학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박철호 메밀TV’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박철호 메밀TV’ 갈무리)
    박철호 대표는 유튜브에서 메밀에 관한 과학, 식문화, 문학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박철호 메밀TV’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박철호 메밀TV’ 갈무리)
    ‘메밀 곡차가 좋아요’ 영상 인트로에는 박철호 대표가 메밀밭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유튜브 ‘박철호 메밀TV’ 갈무리)
    ‘메밀 곡차가 좋아요’ 영상 인트로에는 박철호 대표가 메밀밭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유튜브 ‘박철호 메밀TV’ 갈무리)

    ▶퇴임 후에도 메밀 사랑 이어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퇴임 후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던 박 대표는 ‘메밀하우스’를 열기로 했다. 박 대표의 사무실이자 메밀 관련 자료 보관소, 토론 가능한 세미나실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또 오랜 시간 교류해온 세계메밀학회의 창시자 이반 크레프트(Ivan Kreft) 교수와의 우정을 기념하는 공간의 의미도 있다.

    춘천 팔호광장 인근에 ‘메밀하우스’를 연 박 대표는 처음엔 오프라인으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의 1인 크리에이터 교육생으로 선발되며 이 공간은 스튜디오로도 활용 중이다.

    박 대표의 유튜브 채널 ‘박철호 메밀TV’는 메밀 관련 아카이브(기록보관소)로 메밀에 관한 과학, 식문화, 문학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아쉽게 단명했던 메밀종합교양지 ‘메밀’을 발전시켜 영상으로 복원했다는 의미도 갖는다. 영상은 일주일에 하나씩 업로드한다.

    박 대표는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찾고 논문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과학자, 전문가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쉽고 간단하게 가공하고 정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박 대표는 “수입과 관계없이 메밀에 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 채널에 찾아와 정보를 얻게 되면 큰 보람일 것”이라며 “지역적으로도 우리 지역에서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추후에는 영어자막을 도입해 메밀에 관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배지인 기자 bji0172@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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