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춘천에서 살아남기] 2. 우리의 밥벌이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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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춘천에서 살아남기] 2. 우리의 밥벌이 上

    춘천에 자리잡은 '턴족' 청년 5인 인터뷰
    지역성 담은 브랜드 기획해 창업
    로컬 라이브러리 카페, 디자인 리빙 제품 쇼룸
    춘천 색깔 녹여낸 골목상권 부활의 주축

    • 입력 2021.08.17 00:01
    • 수정 2021.08.23 17:38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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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의 도시’. 청춘의 도시로 불리는 춘천이 가진 또 하나의 수식어다. 2018년 총부가가치 기준 춘천지역 지역내총생산(GRDP) 7조2362억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공공,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으로 1조7212억원(23.8%)이다. 부가가치와 고용창출의 핵심인 제조업은 4510억원으로 6.3% 수준에 그친다.

    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는 대부분 공공의 영역에 쏠려있다. 수도권과 비교해 낮은 임금, 저조한 고용률 등 취업에 불리한 환경으로 인해 지역 청년이 떠난다. 청년 인구 유인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양질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손꼽히는 이유다.

    ‘공무원의 도시’ 한가운데, 공공의 영역 밖에서 제 몫의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은 어떤 모습일까. 춘천의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 5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수도권 등 대도시로 진학 또는 취업했다 연고지로 돌아오는 U턴, 대도시를 떠나 고향 인근의 중소도시로 이주하는 J턴, 대도시에서 연고 없는 지역에 정착하는 I턴 등으로 춘천으로의 전입 유형을 분류했다. ‘턴족’ 청년들의 밥벌이에 대해 소개한다.

    ■돌아온 한이와 새로 온 낙원이
    강원대 공과대학 건너편 효자동 골목길 한켠에 올해 초 ‘소양하다’라는 이름의 로컬 라이브러리 겸 카페가 문을 열었다. 서울로 대학 진학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U턴족’ 윤한(31) 대표, 대학 선배의 동업 제안을 승낙해 처음으로 춘천 땅을 밟은 ‘I턴족’ 백낙원(30) 매니저의 합작품이다.

     

    로컬 라이브러리 겸 카페 '소양하다'의 백낙원 매니저(사진 왼쪽)와 윤한 대표(사진 오른쪽). (사진=권소담 기자)
    로컬 라이브러리 겸 카페 '소양하다'의 백낙원 매니저(사진 왼쪽)와 윤한 대표(사진 오른쪽). (사진=권소담 기자)

    ‘소설 쓰는 기획자’ 윤한 대표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후 춘천으로 돌아왔다. 지역 여행사에서 실무를 익혔고 강원대에서 관광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두레 사업 춘천지역 청년 PD로 일하며 로컬 관광 시장과 창업 환경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이런 자원을 바탕으로 직접 도시재생형 청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대학 전공을 살려 ‘문학’을 주요 콘텐츠로 지역성을 담아낸 사업체를 꾸렸다.

    부모님의 휴대전화에 윤 대표는 ‘돌아온 한이’라고 저장돼있다. 서울에서 20대 초반을 보냈지만, 대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방학마다 춘천에서 시간을 보냈고 마음이 힘들 때 고향을 떠올렸다. 유대감이 끈끈한 가정에서 자란 그에게 춘천은 ‘가족’의 동의어다. 토박이로서 갖고있는 인적 네트워크, 지역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체득한 자산은 춘천에서의 삶을 더 윤택하게 했다.

     

    음료를 곁들인 소양하다의 문학 글쓰기 모임. (사진=소양하다)
    음료를 곁들인 소양하다의 문학 글쓰기 모임. (사진=소양하다)

    ‘시 쓰는 바리스타’ 백낙원 매니저는 인천 출신으로 충남 아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비건 식품 사업을 꾸려왔다. 요리, 외식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아 대학 선배인 윤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춘천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윤 대표가 로컬 라이브러리 기획 사업을 총괄한다면, 백 매니저는 카페 메뉴 개발 등 식음 분야를 담당한다. 로컬 식재료를 반영한 메뉴를 선보이며 나아가 문학과 어울리는 풍미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백 매니저는 ‘문학 소년’이었다. 고교 시절 전국 단위 대형 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전공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며 잊고 살았지만 소양하다를 함께 기획하면서 그의 전문성이 빛을 발하고 있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시작(詩作) 모임 ‘시시한 금요일’은 백 매니저 주도로 열린다. 시제를 골라 관련 시를 읽고 로컬 기반의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역할이다. 시 한편을 연상케 하는 블렌딩 원두로 내린 커피도 곁들인다.

    최근에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소풍벤처스, 오요리아시아가 주관한 ‘강원 외식업 소셜벤처 육성사업’에 참여해 로컬 재료를 사용한 음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홍천 가리산에서 난 산딸기, 동면에서 난 살구, 오디와 앵두 등 인근 지역 과일을 이용한 에이드가 중심이다.

    연고 없는 춘천으로 오면서 적응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동업자인 윤한 대표가 갖고 있는 인프라가 큰 도움이 됐고, 소양하다 개업 전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 만난 지역의 어른들은 ‘외지 출신’인 그를 따뜻하게 품었다.

    윤한 대표는 자신을 ‘뜨뜻미지근한 중소도시 사람’으로 묘사했다. ‘차가운 도시 남자, 여자’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이와 대조되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윤 대표는 “춘천 사람들은 초반에 불같이 이는 열정은 없어도 조금씩 옆구리를 찔러보면 누구보다 흥미를 갖고 ‘재밌는 일’에 몰두한다”며 “나 역시 그런 뜨뜻미지근한 성정을 가진 춘천 사람이고, 고향의 사람들과 함께 발맞춰 지역에서의 움직임을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음료를 곁들인 소양하다의 문학 글쓰기 모임. (사진=소양하다)
    음료를 곁들인 소양하다의 문학 글쓰기 모임. (사진=소양하다)

    ■토박이의 춘천 다시 보기
    허문영(29) 씨는 효자동에서 태어났다. 남춘천중, 춘천고 졸업 이후 대학 재학 기간 대전에 머물렀던 몇 년을 제외하면 내내 춘천에서 인생의 시간을 보낸 토박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취업한 U턴족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5년간의 디자인 회사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로컬성을 기반에 둔 리빙 브랜드 사업을 기획 중이다. 내년 봄 사농동에 공간을 완성하고 ‘디어라운드’라는 카페 겸 스테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대량 생산된 대형 브랜드 제품 보다는 취향을 기반으로 한 크래프트 문화에 집중, 춘천의 색깔을 살려 브랜드화하고 주방용품, 침구 등 리빙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춘천의 물, 숲, 호수 등 자연적 소재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친환경 섬유를 활용한 제품을 구상했다.

    앞서 소개한 윤한 대표와 백낙원 매니저처럼, 허씨도 충남 공주에서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대학 동기 백진희(29)씨에게 춘천에서의 동업을 제안했다. 커피 등 F&B 분야는 백씨가 맡고 스테이 공간은 허씨가 기획, 디자인한 리빙 제품의 쇼룸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허문영씨는 패션·섬유를 전공한 후 시각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전 직장에서 브랜드 컨설팅과 인테리어 사업까지 경험했다. 실무 경험에 학술 전문성을 쌓기 위해 강원대에서 비주얼 시각 디자인 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주거비를 아껴 가며 창업을 위한 자본을 착실히 모았다. 부모님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창업 결심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로컬 리빙 브랜드 기반 카페, 스테이 공간 창업을 준비중인 허문영(29)씨. (사진=허문영씨 제공)
    로컬 리빙 브랜드 기반 카페, 스테이 공간 창업을 준비중인 허문영(29)씨. (사진=허문영씨 제공)

    춘천 출신 토박이로 로컬의 색깔을 살린 브랜드 사업을 기획하고 있는 허씨는 외지 인구의 유입보다는 지역의 청년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자인 콘텐츠 분야는 유행에 민감한데다, 각종 지원금을 목적으로 외지에서 유입됐다가 다시 타 지역의 지원 제도를 찾아 떠나는 일부 청년 창업가의 행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의 색깔을 활용하는 방식은 이 지역 출신이 가장 잘 안다”며 “과거 디자이너는 의뢰인의 하청업체 개념으로 일해왔지만 요즘은 협업의 관계가 강조된다”고 밝혔다. 이어 “자체 브랜드를 먼저 확립해야 다른 분야로의 확장도 가능해진다”며 “로컬의 여러 창업자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춘천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이어갈 계획이다”고 전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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