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인형작가’ 황효창 원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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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인형작가’ 황효창 원로화백

    1970~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 주도
    삶과 시대 반영하기 위한 실험 지속
    인형으로 현실에 뿌리 내린 예술 실현

    • 입력 2021.08.09 00:01
    • 수정 2023.09.07 11:54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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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문화예술은 후대를 위해 기꺼이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원로가 존재해야만 발전한다.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지역에 뿌리내리고 예술 발전에 자양분을 자처하는 원로의 존재 덕분에 전통은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서양화가 황효창(76) 화백은 강원민족예술계에서 ‘원로 중의 원로’로 통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중미술을 선도하며 우리 삶과 시대를 반영하기 위한 실험을 이어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해 후학 양성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후배 작가, 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사진=신초롱 기자)
    춘천시 서면 오월리 작업실에서 만난 황효창 화백. (사진=신초롱 기자)

    시대의 부조리와 현실이 담겨 있는 황 화백의 그림에는 수많은 의미와 현실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그림에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면 오월리의 작업실을 찾았다.

    소음과는 동떨어진 자연 속에 위치한 작업실 앞에는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노란색 자동차가 시선을 빼앗는다. 이를 뒤로 하고 들어선 작업실에는 황 화백의 손때 묻은 작품 수십 점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작품 대부분은 인형을 소재로 한 그림이었다.

    ▶인형 통해 ‘삶’의 부조리와 현실 담아

    춘천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에 진학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두각을 드러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상을 휩쓸 만큼 실력을 인정 받았다. 대학은 학교 선배 등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에스쁘리’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 시절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취지로 모인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시대를 이끌어가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문득 외국의 예술을 답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예술에 회의 아닌 회의를 느끼면서 다시 캔버스를 꺼내 그림을 그려 나갔다.

     

    춘천 서면 오월리에 위치한 황효창 화백의 작업실. (사진=신초롱 기자)
    춘천 서면 오월리에 위치한 황효창 화백의 작업실. (사진=신초롱 기자)

    황 화백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리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을 그려놓고 보니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인형을 통해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인형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황 화백은 국내·외에서 100여 회가 넘는 개인전, 그룹전을 가졌음에도 도록이나 작업노트가 없는 작가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황 화백의 옆을 지키던 아내 홍부자 여사는 “남편이 말주변이 없는 탓에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에 황 화백은 “나도 수업할 땐 얘기 잘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어둡고 칙칙했던 그림, 세월 흐름에 맞춰 차츰 변화

    그가 그린 작품은 ‘삐에로의 눈물’(1985), ‘침묵’(1985), ‘웃기는 세상’(1985), ‘왕자와 제비’(2005), ‘번호 붙이는 사람들’(2006), ‘새와 함께 날다’(2007) 등 직관적인 제목이 인상적이다. 작업실에 걸려있는 작품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시 출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목을 붙일 정도로 제목을 정하는 일에는 무심한 편이다. 작품을 완성한 뒤 제목을 애써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효창 화백의 작품 ‘왕자와 제비’(2005), ‘번호 붙이는 사람들’(2006)
    황효창 화백의 작품 ‘왕자와 제비’(2005), ‘번호 붙이는 사람들’(2006)

    황 화백은 “제목을 그럴 듯하게 붙인다는 것 자체가 사기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의 말에는 작가가 제목과 작품의 의미를 강조하면 작품 감상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는 듯했다.

    다만 시선을 사로잡는 색채와 거침 없는 터치로 완성된 작품은 개성이 워낙 뚜렷해 얼핏 보더라도 그의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최근 남춘천역 1층에 위치한 문화공간 역에서 진행 중인 개관 1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피켓 든 남자’라는 작품에도 소신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은 본래 어둡고 칙칙했다. 1980년 후반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온 뒤에는 조금씩 변화를 거쳤다. 암담했던 세월이 빛을 서서히 찾아가면서 슬프고 절박한 모습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영감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족미술이란 현실에 뿌리 내린 것”

     

    황효창 화백의 작품 ‘번개시장’(2011)
    황효창 화백의 작품 ‘번개시장’(2011)

    그는 인형 외에도 춘천에서 사라져 가는 동네의 모습도 종종 담아내고 있다. 생활 속에 있는 예술이야말로 ‘민족미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황 화백은 지난 2006년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현실에 뿌리를 내린 예술을 한다는 의미에서 춘천민족미술인협회를 설립했다. 2010년에는 강원도 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에 선출돼 지역 민족미술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강원도립미술관 건립이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두고 관의 소극적인 의지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춘천에서 이어지고 있는 시립미술관 건립 움직임에 대해서는 “춘천은 다른 도시보다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미술관이 없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큰 타격이다”고 반색했다.

    끝으로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그림을 그리며 사는 거니까”였다. 황 화백에게 있어 그림이 없는 삶은 암흑과도 같은 것이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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