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문학의 뜰’ 개관 전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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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문학의 뜰’ 개관 전상국 소설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동행’으로 등단
    ‘문장력과 어휘력 젬병’ 스승 혹평에 글쓰기 몰입
    “문법 파괴에 재미 느껴”…소설 최초로 초성체 사용

    • 입력 2021.07.25 00:01
    • 수정 2023.09.07 11:54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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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상국 문학의 뜰’에서 만난 전상국 소설가. (사진=신초롱 기자)
    ‘전상국 문학의 뜰’에서 만난 전상국 소설가. (사진=신초롱 기자)

    소설가이지만 그 타이틀을 한 번도 스스로가 내세운 적 없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김유정 작가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이가 있다. 춘천시 신동면 증리 주민들은 그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흠칫 놀란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문예반 고교생은 여든을 넘긴 원로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을 ‘소설가’라고 명명했다.

    전상국 소설가는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행’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전상국 소설가는 60여 년 동안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등 100편의 중·단편 소설과 장편 4편, 500여 편의 꽁트와 수필 등의 작품을 집필한 현역 작가다.

    그럼에도 전 작가는 죽기 전, 아니 나이를 더 먹기 전까지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신념을 되뇌이며 정진(精進)하고 있다.

    ■춘천고 시절, 은사의 혹평에 ‘글 재미’ 알게 돼

     

    ‘바람난 마을’, ‘외딴집’ 자필원고와 도서. (사진=신초롱 기자)
    ‘바람난 마을’, ‘외딴길’ 자필원고와 도서. (사진=신초롱 기자)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출신인 전상국(1940년 출생) 소설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춘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문학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는 고교 2학년 때 들어갔던 문예반에서 고 이희철 선생으로부터 ‘넌 어휘력과 문장력이 젬병’이라는 혹평을 들었던 일화는 의아함을 자아낸다.

    “문학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문예반에 들어갔어요. 이희철 선생님이 제가 쓴 글을 읽으신 뒤 ‘너는 어휘력과 문장력이 젬병이다. 재능이 없으니 앞으로 글 쓰지 말아라’면서 던지시더라고요. 이후 어휘력과 문장력이 없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낱말로 문장을 만들어보고 계속 썼죠.”

    스승의 혹평은 전상국 소설가가 그 어떤 작가보다도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력으로 호평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전 소설가는 문법 파괴를 통한 창작의 새로움과 재미를 아는 작가이기도 하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동행’에는 ‘그러면서 그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ㅎㅎㅎㅎㅎㅎ’ 등에서 볼 수 있듯 한국소설 최초로 초성체를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전상국 소설가는 “남들이 하는 걸 해서는 인정을 못 받을 것 같았고 창의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낯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문법을 깨는 것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소설가 전상국’을 만든 은사와 길벗들

     

    전상국 소설가의 은사와 글벗들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는 공간. (사진=신초롱 기자)
    전상국 소설가의 은사와 글벗들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는 공간. (사진=신초롱 기자)

    “제 문학이 성장이 성장하고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들이에요. 저에게 굉장한 의미를 가지죠.”

    전상국 소설가는 살면서 만난 인연을 잊는 법이 없다.

    이는 문학인생을 걸어오며 지금껏 만난 이들의 명함을 단 한 장도 버리지 않는 이유다. 전 소설가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승과 선배, 길벗들은 오늘날의 그를 만든 동력인 셈이다.

    이희철(1930~2016) 선생에 의해 글쓰기의 재미를 맛봤다면 삶의 새 지평을 열 수 있게 된 건 황순원(1915~2000) 소설가 덕분이다. 전 소설가는 고교 시절 장편소설 ‘인간접목’을 읽고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희대학교 국문과 입학을 결심했다.

    조병화(1921~2003) 시인도 전 소설가에게 특별한 은사다.

    지난 1972년 3월 시골에서 교사로 일하던 전 소설가를 서울로 불러와 등단 10년 만에 글쓰기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서정범 수필가는 그가 경희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며 원서까지 가지고 와 쓰게 할 정도로 애정을 쏟던 은사다.

    신봉승(1933~2016) 작가는 전 소설가와 대학교, 대학원 선배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 소설가는 그에 대해 자신의 문학을 가장 인정하는 인물이면서 인생에 꼭 필요했던 분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전 소설가의 곁에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다니던 단짝 유재용(1936~2009) 소설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함께 다니며 우정을 나눴던 ‘리빠똥 장군’의 김용성(1940~2011) 소설가, 춘천고 동기동창이면서 문예반 활동을 함께 했던 이승훈(1942~2018) 시인, 대학교 1학년 때 자취 생활을 함께 했던 천재 시인 이성부(1942~2012)도 잊지 못할 스승과 길벗으로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60년의 문학인생, ‘문학의 뜰’에 집합

     

    김유정 생가가 위치한 춘천 신동면 증리에 위치한 ‘전상국 문학의 뜰’ 외부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김유정 생가가 위치한 춘천 신동면 증리에 위치한 ‘전상국 문학의 뜰’ 외부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글 쓰는 것과 가르치는 것으로 ‘신명’을 찾았다는 전 소설가는 최근 춘천 김유정 생가가 위치한 신동면 증리에 ‘전상국 문학의 뜰’을 세웠다.

    건립 배경에는 아내의 간곡한 뜻이 크게 작용했다. 전상국 소설가의 아내 김옥자 여사는 늘 소설가라는 이름을 감춘 채 김유정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알려온 남편을 보며 안타까워 했다.

    전상국 작가는 “아내는 ‘안 쓰는 것이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왜 안 써야 되는데?’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쓸 때 쓰기 위해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 만큼 아마도 아내는 이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했었던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문학의 뜰’에서는 전 소설가를 있게 한 은사, 선배, 동료 문우들의 흔적과 희귀자료는 물론 그가 평생을 모은 도서 2만 권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전상국 소설가라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산실과도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에 대해 전 작가는 “서재에 쌓아두고 있던 소중한 도서와 자료들에 대한 가치를 저 혼자 알고 있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나눠보자는 생각이었고, 제가 죽으면 쓰레기가 될 것 아니겠냐”며 “귀중한 자료를 오시는 분들이 마음대로 열람하셨으면 좋겠고, 훗날에는 이 공간이 사회에 환원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전 소설가는 ‘문학의 뜰’을 찾는 이들이 한 작가를 이해하게 되고,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길 바란다는 작은 뜻도 내비쳤다.

    전상국 소설가는 “이 공간을 준비하면서 ‘아, 나는 버리지 못했구나’를 알게 됐다”며 “모든 게 소중했던 만큼 제가 매달리고 신명을 내고 살 수 있었던 게 바로 ‘이거였구나’를 알 수 있었고, ‘문학의 뜰’에 있는 모든 자료는 저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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