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너희 집엔 우산이 몇 개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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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너희 집엔 우산이 몇 개였니?

    • 입력 2021.07.25 00:00
    • 수정 2021.07.26 15:50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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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바로 엊그제 오후의 일이다. 춘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빗줄기의 힘만으로도 우산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내렸다. 아마 40분쯤은 그랬던 것 같다. 문학촌 초가지붕에 내리는 비와 또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 풍경을 여러 장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냈다.

    서울 사는 사람이 ‘여기는 해가 쨍쨍 너무 더워요’ 하는 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교통이 발달해 아무리 가까워졌다고 해도 실제 춘천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그런데 춘천 시내쪽에 있는 사람이 ‘여기는 비가 안 와요.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늦은 오후에 내린 비여서 잠시 후 퇴근했다. 김유정역에서 남춘천역까지 전철로 5분 거리다. 아주 가깝지는 않아도 먼 거리는 아니다. 남춘천역에 내리니 비가 내린 흔적조차 없다. 아, 그게 소의 등판 이쪽과 저쪽을 경계지어 내리는 소나기였구나.

    여름철엔 가방 안에 늘 가볍고 작은 우산 하나를 넣어 다닌다. 삼단으로 접는 양산 같은 우산이다. 핸드폰과 우산 무게를 달아보니 우산이 더 가볍다. 우리가 해외여행 중에 그 나라 그 지역의 날씨를 일기예보를 통해 미리 알기는 쉽지 않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외국사람들이 전철을 타고 이동하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한다. 전철을 타기 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목적지 역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린다. 이런 경우는 낭패스럽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 중에 여자들은 그 작은 핸드백 안에서 그보다 더 작게 착착 접은 우산을 꺼내 바로 펼쳐 든다.

    어릴 때는 비가 오는 게 참 싫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언젠가 그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그 상황을 전혀 반대로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도 너희는 비가 와도 비를 안 맞고 학교 다녔다는 것이다. 누구 기억이 맞나 가릴 상황은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으로는 집에 우산이 많아 다른 집 아이들은 비를 맞아도 어머니의 자식들은 누구도 비를 맞지 않고 다녔던 것이다. 다른 형제들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비를 많이 맞았다. 

    서로 기억이 틀린 부분은 이렇다. 집에 우산이 다섯 개쯤 있는데, 아침에 비가 내리면 시골 마을에서 강릉 시내로 출근하는 아버지가 우선 우산 하나를 들고 나간다. 그다음 시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형이 우산 하나씩을 들고 나간다. 남은 우산은 두 개고, 아직 학교에 가야 할 아이는 셋이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 중에 막내는 어느 경우에라도 우산을 써야 한다. 안 쓰면 난리가 난다. 

    이제 우산이 하나 남았다. 나와 한 살 아래의 연년생 여동생이다. 하나 남은 우산을 내가 오빠라고 쓸 수가 없다. 내가 쓰면 여동생이 비를 맞는다. 차라리 내가 비를 맞는 게 낫다. 당연히 양보한다. 그러면 같이 쓰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은 마당에서 헛간까지 갈 때의 일이고, 30분 빗길에 우산을 같이 쓰면 그건 둘 다 안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혼자 쓰고 가도 제대로 우산을 들 줄 몰라 얼굴 말고는 양쪽 어깨까지 젖는다.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내다보시고 우산이 없으면 삿갓을 쓰고 가라고 하신다. 정답이긴 한데 아이를 많이 낳던 시절, 아무리 시골 학교라지만 전교생이 300명쯤 되는 학교에 우산 대신 삿갓을 쓰고 오는 아이는 없다. 어린 우리들 마음에 삿갓은 어른들이 논물을 보러 다닐 때 쓰고, 비가 오는데 밭에 나갈 때나 쓰는 것이지 학교에 쓰고 가는 우산은 아니다. 그리고 삿갓을 아이들이 쓰면 머리 테두리가 옥죄어 머리가 아프다.

    50년도 전에 시골집에 우산이 다섯 개면 적은 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많은 우산이 있었다. 거기에 삿갓도 두세 개 있었다. 아이들이 비를 맞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산보다 더 많은 자식이 있었다. 모든 자식이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우산보다 숫자가 더 많은 자식 중에 하나는 비를 맞고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 가끔 묻는다. 지금 우리집에는 우산이 몇 개 있지? 그리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묻는다. 그 시절 너희집엔 우산이 몇 개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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