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가 심부름 센터? “마사지해줘” “연탄 갈아줘” 황당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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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가 심부름 센터? “마사지해줘” “연탄 갈아줘” 황당 요구

    콜택시 부른 듯 목적지 말해
    출장 의료 서비스 취급 받아
    요구 거절하면 민원으로 협박
    코로나 핑계 황당 신고 잇따라

    • 입력 2021.07.22 00:01
    • 수정 2021.07.24 00:05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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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연중 119 신고가 가장 많이 몰리는 여름철, 춘천소방서는 다수의 비긴급 신고 대응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소방서 A구급대원은 최근 배가 아프다는 신고를 받고 도착한 현장에서 병원 이송을 거절한 시민에게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신고 시민은 “배가 자주 뭉치는데 30분 정도 마사지를 해야 풀린다”며 A대원에게 배 마사지를 요구한 것이다. 신고자는 요구를 거절하면 민원을 넣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춘천소방서 B구급대원은 지난 겨울 온몸이 아프다는 신고를 받은 직후 환자의 집으로 급히 출동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건 멀쩡한 모습의 신고자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급한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던 환자는 “아픈 데 없으니 온 김에 연탄을 교체해 달라”며 당당하게 요청했다.

    춘천소방서 구급대원들이 시민들의 황당한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신고접수가 몰리는 여름철은 폭염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MS투데이 취재결과, 춘천소방서에 접수되는 신고건수는 매년 2만 여건으로, 월평균 1700~1800건의 신고를 처리한다. 특히 여름철(7~8월)은 월평균 2000건이 넘으면서 연중 신고가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다.

    문제는 재난·재해, 각종 사건·사고로 시간을 다투며 위급환자를 구조하기도 부족한 지역 내 소방·구급 인력이 비긴급 신고에 대응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위급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소방관들에게 “문 열어달라”, “태워달라”,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은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 등의 요구는 그나마 애교(?) 있는 신고다.

     

    춘천지역의 긴급신고와 비긴급신고 비율는 3대 7이다. ‘연탄을 갈아달라’, ‘과일을 깎아달라’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래픽=조아서 기자)
    춘천지역의 긴급신고와 비긴급신고 비율는 3대 7이다. ‘연탄을 갈아달라’, ‘과일을 깎아달라’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래픽=조아서 기자)

    김동현 춘천소방서 구급대원(32)은 “가스레인지 확인 신고 같은 경우는 실제 화재 발생 우려가 있어 살수차까지 최소 7~8대, 많게는 10대의 소방차량이 출동하지만 알고 보면 가스레인지를 끄고 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화재 우려 시 신고하는 건 맞지만 스스로 조금만 신경쓰고, 지인이나 가족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다른 곳에서 발생한 위급 현장에 지원 지연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구급차를 콜택시처럼 이용하는 신고자들은 일상이 된지 오래전이다. 이들 중엔 기다렸다 집까지 다시 태워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신고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신고자를 두고 그냥 돌아설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일선 소방관들은 “집까지 태워달라고 요구하는 주취자의 경우 안된다고 설명해도 ‘너는 너희 아버지한테도 그러냐’, ‘내가 먼저 전화했는데 왜 우선순위에서 밀리냐’,  ‘나도 응급환자다’ 등 자신의 권리를 운운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만큼 그냥 빨리 요구를 수용하고 상황을 종료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때가 많다”며 “주취자는 태우지 않는다는 원칙, 무리한 요구는 선례를 남길 수 있어 거절해야 한다는 원칙 등이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춘천소방서 김동현 구급대원이 본지 기자에게 지역내 비긴급신고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춘천소방서 예방안전과 이수한)
    춘천소방서 김동현 구급대원이 본지 기자에게 지역내 비긴급신고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춘천소방서)

    특히,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민감해진 시민들이 119구급차를 출장 의료 서비스 개념으로 부르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한 20대 남성은 지난해부터 발열을 이유로 신고 전화를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신고전화가 올 때마다 보호복을 입고 구급차로 출동해 신고자의 체온을 측정하지만, 매번 코로나19 의심 증상 기준에 못 미친다. 체온을 재고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신고자는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마저 듣지도 않은 채 “네~ 알겠으니 이만 가보세요”라며 구급 대원을 배웅하곤 한다.

    또 지난 4월부터 혈압 측정을 위해 119 신고를 일삼는 30대 남성도 있다. 매달 한번씩 혈압이 이상하다며 신고 전화를 하는 이 남성은 병원 이송은 지속적으로 거부하며 자택으로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혈압 상태를 확인받는다.

    소방관들은 “큰 사건·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허탈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강원도소방본부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지도와 그래프로 보는 강원도 소방수요’ 중  지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신고를 분석한 결과, 춘천지역의 긴급신고와 비긴급신고는 3대 7로, 비긴급신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와 함께, 춘천의 소방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시민은 2018년 기준 1243명으로, 이는 강원도 평균인 535명의 두배를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동현 대원은 “비응급 신고 처리로 긴급신고에 지원이 늦어져 임산부, 심뇌혈관 질환자, 심정지 환자 등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실제로 현장에서 종종 발생하고, 그럴 때 사기가 저하되며 회의감도 많이 든다”며 “과태료나 처벌 강화도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는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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