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울어진 균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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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기울어진 균형발전

    • 입력 2021.07.17 00:01
    • 수정 2021.07.18 06:17
    • 기자명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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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현 기자
    박수현 기자

    현 정부 들어서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무엇인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지만 기자는 ‘지역균형발전’을 꼽겠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 당시 5대 국정목표로 제시한 ‘고르게 잘사는 지역’은 임기를 1년도 채 안 남긴 여태까지 구호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국정감사 시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정책 이행도 지역 입장에서는 해묵은 내용일 뿐이다. 그만큼 지역에 있어 한국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지 오래다.

    ▶K-바이오 랩허브, 왜 하필 수도권인가

    이달 5일 춘천시가 국책사업인 ‘K-바이오 랩허브’ 유치에 고배를 마셨다. 사실 춘천이 유치에 성공할 것이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실망스러운 결과도 아니었다.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송도를 비롯해 각축전을 벌였던 대전, 오송, 양산 등 하나같이 쟁쟁한 지역들이었다.

    탈락의 사유로 제시된 후평산업단지의 환경성이나 면적 수용성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면도 있지만, 어쨌든 전문가들의 판단이니 ‘1차 탈락’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 있다. 비슷한 국책사업이나 SOC사업이 있을 때마다 지방자치단체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더 이상 입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번 불만의 요지는 ‘왜 하필 수도권이어야 했냐’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K-바이오 랩허브의 최종 후보지를 송도로 선정함으로써 9곳의 비수도권 지자체는 또다시 ‘지방 소외’라는 쓴맛을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중기부가 최종 후보지를 발표하면서 선정 근거랍시고 제시한 “송도에는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이 있고, 산·학·연·병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매우 황당하다. 수도권이라서 뽑아줬다는 말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춘천은 작은 바이오기업들이 자생적 성장을 이뤄낸 지역”

    기자가 춘천에서 K-바이오 랩허브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입수하고, 취재를 이어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춘천의 바이오산업이 아직 경쟁력을 완벽하게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나름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발전했다’는 자부심이 크다.

    실제 바이오산업은 춘천이 ‘상수원보호지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삼은 지역의 성장 동력이었다. 이를 위해 2003년 출범한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당시 매출 360억원, 수출 4억원, 고용 3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며 지난해에는 매출 7600억원, 수출 2000억원, 고용 2600명이라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기업은 어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검사하는 진단부터 백신 개발 및 생산,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는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모두 춘천에 있다. 진단 분야에는 바디텍메드, 백신 개발 분야에 유바이오로직스, 백신 위탁생산에 한국코러스, 치료제 개발 분야에는 이뮨메드 등이 있다.

    이러한 ‘자생력’을 평가 기준에서 제외한 중기부의 판단은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다. ‘대기업의 존재’와 ‘인프라 집중’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지방이 수도권을 상대로 승리할 확률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운동장은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이러한 운동장이 기울어져 불리함을 겪거나 소외 당하는 이가 있다면 평평하게 바꿔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박수현 기자 psh5578@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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