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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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선생님께

    ‘교사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만남

    • 입력 2021.07.14 00:00
    • 수정 2021.07.14 09:45
    • 기자명 신준철 시인·춘천연극제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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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준철 시인·춘천연극제 운영위원
    신준철 시인·춘천연극제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습기를 머금은 34도를 웃도는 폭염, 사회적 거리두기의 이어짐의 힘든 상황이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오는 8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교직에 발을 들이며 겪었던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그중에서도 함께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과의 일화는 제게 빼놓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벌써 25여 년 전의 일이지만 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던 일들을 떠올리니 문득 선생님이 생각나서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먼저 선생님의 명예 퇴임식 때의 기억을 끄집어낼까 합니다. 학교 강당으로 선생님들과 관악부 학생들 그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조촐하게 마련된 선생님의 명예 퇴임식장으로 들어서고 수십 년을 교직에 몸담으시다 앞당겨진 정년으로 인해 정들었던 교직을 떠나시는 선생님께서는 어느 때보다도 착잡한 표정으로 준비해 놓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저는 차례가 되자 선생님께 드리는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학교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었던 선생님과 동고동락 했던 학교생활을 머-언 추억으로 남겨둔 채 이렇게 떠나는 자와 남는 자로 구분됨이 실로 안타깝기만 합니다”라고.

    실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올곧은 교직생활을 이렇듯 마감하는 선생님과 기업체 생활 11년을 뒤로한 채 뒤늦게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저와의 만남은 교직 초년병 시절을 보내고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을 해가던 3년째 교무과 문서를 담당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제게 학교생활은 낯설기도 하고 또 경험이 없기에 배워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과중된 업무에 버거워하고 있을 즈음, 선생님은 미소를 가지시고 찾아와 술 한 잔을 제의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간혹 학교 내에서 마주칠 때면 늘 정갈하고 단아하신 모습으로 모두의 인사를 깍듯하게 받아주셔서 후배교사로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술자리에서는 당신께서 30여 년간 경험하셨던 소중한 추억들을 한 올, 한 올 실타래를 벗기듯 젊은 교사에게 풀어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면 제 자리로 찾아오셔서 차 한 잔을 나누며, 학생들의 지도방법과 수업진행에 대한 노하우, 그리고 인생의 그윽한 멋까지도 한참 아래인 후배교사에게 격 없이 풀어놓곤 가셨습니다.

    선생님은 사실 2-3년간 더 교직에 몸담으시며 승진하실 수 있음에도 늘 말씀하시던 대로 평교사로서 교사생활을 마감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부터 혼란스런 지금까지 땀으로 얼룩지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불볕 같은 더위 속에서 벽 위에 동그마니 놓여있는 작은 선풍기 아래서 닦고 닦아도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시며 수업하시던 모습을, 난로 하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두툼한 외투를 걸쳐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교실에서 손이 얼어 가면서도 백묵가루 뒤집어쓰시던 교직에서 보여주셨던 올곧은 일들을,

    선생님의 애써 감추심이 우리 후배교사들에게 진정 교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사랑의 표시인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 자주 연락드리지 못하지만 늘 선생님이 베풀어주셨던 따뜻함을 진정 감사 드리고 있음을 늦었지만 편지로나마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교단을 떠나셨지만 선생님께서 깨우쳐주신 ‘교사의 기쁨’은 제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제자들의 가르침에 영롱한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씀드리면서 건강하시라는 인사로 편지를 맺을까 합니다.

    앞으로는 시간 나는 대로 가끔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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