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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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 입력 2021.07.12 00:00
    • 수정 2021.07.13 04:54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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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늦장마가 남부 지방을 연일 할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겠지요. 직장인들이 고대하는 휴가 시즌도요. 그래서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시간 죽이기’에 딱 좋은 소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예전에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대체로 재미 위주의 책을 골랐습니다. 왜, ‘페이지 터너’라고 하죠. 흠뻑 빠져들어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는 책 말입니다. 등덜미로 땀이 줄줄 흐를 지경에 아무리 좋다 해도 딱딱한 책과 씨름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지난해 완간된 장르 소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서인하 지음, 라온E&M)를 택했습니다. 고른 이유요? 물론 평일에 손에 들면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빠져들 가능성이 클 만큼 재미있다는 게 으뜸 이유이지만 직장생활의 교본이 될 정도의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야기가 좀 새는 감이 있지만 ‘장르 소설’이라 하면 흥미 위주의 싸구려 대중소설이란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장르 소설 중에도 ‘현대 판타지’에 속하는데, 주인공이 재벌의 서자라거나, 죽었다가 살아나거나(환생) 과거로 돌아가서(회귀) 초능력 혹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전지적 지식으로 재벌이 되는 게 대부분 현대 판타지의 정형입니다.

    『로또 1등…』은 이런 허무맹랑함 혹은 천편일률적인 면을 뛰어넘었기에 현대 판타지에 관한 선입견을 깨뜨려줍니다. 아, 물론 이 소설에도 평범한 보통사람은 가질 수 없는 ‘치트키’가 있습니다. 바로 이 소설의 소재인 ‘로또 1등 당첨’입니다.

    주인공 공은태는 홍성인터내셔널이란, 해외 명품 의류 브랜드를 수입하는 중견 회사의 팀장입니다. “3년 정도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 결과 대리가 되었고  6년 정도 되니 입사 동기보다 일찍 팀장이 된 엘리트 직장인입니다.

    그런 공은태가 로또 1등에 당첨됩니다. “매주 1만 원 정도 로또를 샀는데 작은 돈으로 일 주일간 힐링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튼 세금을 떼고 받은 당첨금 13억 원을 두고 주인공은 고민합니다. 한데 이 과정의 묘사가 꽤나 사실적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큰돈인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금액은 아닌 거 같다.” 그러고는 출근합니다. 이 소설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벼락부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든든한 믿을 구석이 생긴 월급쟁이가 자신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팀원으로 거두게 된 입사 선배와의 갈등, 승진과 보직을 둘러싼 신경전, ‘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사내 정치, 정규직 전환에 목을 매는 계약직 여사원에 대한 배려 등 직장 내 다양한 인간관계에 관한 슬기로운 대처가 나옵니다. 여기에 외국 브랜드와의 교섭에서 론칭 성공 등 그럴듯한 현업의 묘사도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룹니다. 

    사실 필자는 이런 ‘기업’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소설 내용이 워낙 사실적입니다. 거기에 우두머리가 아닌 ‘아랫것’들의 일상, 고민, 보람을 생생하게 다룬 것이 이 소설이 강점입니다.

    “사원일 땐 대리가 산처럼 느껴졌었고, 대리를 달았을 땐 팀장이 하늘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막상 팀장이 되고 보니 난 하늘도 아닐뿐더러 이사 밑으로는 차장도 부장도 그저 타이틀이 있는 사원일 뿐이라는 걸 알겠다.”

    “내게 이 회사를 다니겠다, 그만두겠다 하는 식의 선택권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사장이 아닌 다음에야 직접 같이 일할 상사와 동료, 부하 직원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거다.” 

    이 책은 사실 13권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때문에 후반으로 가면 늘어지는 감도 있습니다. 문장도 딱히 빼어나다 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매력은 여전합니다.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직장생활의 팁을 일일이 소개할 순 없지만 ‘직장생활 할 때 진작 이 책을 읽었더라면’ 혹은 ‘이런 팀장과 일해 봤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들에게 강추할 만한, 그리고 여름 더위를 잠시 잊게 해줄 책입니다. 아, e북으로도 출간되어 커피 반 잔 값으로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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