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4. 기후위기 시대의 존재하는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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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4. 기후위기 시대의 존재하는 광부

    • 입력 2021.06.22 00:01
    • 수정 2021.06.23 10:1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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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라 일컬어지는 시대다. 어떤 과학자는 2030년이면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을 거라며 일찍이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말이 한 과학자의 단순한 주장만은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세계 곳곳에선 산불이나 홍수 같은 기후위기로부터 비롯된 자연재해가 숱하게 일어났다. 남의 나라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지난 해 일어난 기나긴 장마 또한 기후 위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기후위기는 범세계적이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 시간에 단발적인 해결책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각계각층이 협력해 타개해 나가야 하는 인류의 공통 과제다. 최근 몇 년 간, 그렇게 전 세계 각국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집중하고 있는 의제 중 한 가운데 ‘탄소 중립’ 과 ‘탈석탄’ 이 있다. 문재인 정부 또한 그 흐름에 발 맞춰 그린 뉴딜 정책을 앞세운 탄소 중립을 선언하며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 발표했다.

    이 이야기가 어딘가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국가가 자신들의 국정 방향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그에 따른 산업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 국내 유일 내국인 카지노 설립의 배경이 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 과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 ‘메타버스’나 ‘가상 현실’이 중심으로 언급되는 2021년에선 너무도 먼 이야기 같이 들리겠지만 수십년 전 산업화가 가속되던 시대 한 가운데, 정부에 의해 헌신을 독려 받던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가상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현실을 이루는데 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그 헌신이 국가가 주도한 폐광정책에 의해 실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폐특법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하나의 산업을 전환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산업에 의존하던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 나아가 지역 전반의 경제가 위협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탄소 중립은 반드시 ‘정의로운 전환’과 함께 가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로운 전환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사실, 강원도는 중앙과 각 지방 정부의 2050년 탈석탄 선언이 무색하게, 삼척과 강릉에서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을 두고 각 이해관계 당사자들 간의 대립을 겪고 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지만 찬성 측에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반대측에선 기후 위기 및 각종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발전소가 필요한 이유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발전소를 계속, 많이 짓는 이유는 단순히 보자면 우리가 전기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리’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그 지역 내부가 아닌 지역 밖,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수도권으로 더 많이 공급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발전소 건립엔 금융 투자와 지원, 고용과 인력이 따라오니 지역경제활성화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중앙을 위해 공급되는 전기를 위해 지역은 자신들의 환경을 포기하고 중앙에서 받는 각종 금융 투자와 지원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꼴이 된다. 비록, 30년 후 완전히 버려지게 된다 할지라도.

    지역의 발전소 건립은 기실, 이같이 중앙이 깊게 얽혀 있으니 결코 지역 내부만의 문제라 할 수 없다. 수십년 전,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숱한 탄광이 개발되고 또 폐광되어 광부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한 탄광 지역민들이 희생되었듯이, 지역에 발전소를 건립하고 또 건립하지 않는 것도 국가와 중앙이 관여되어 결정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지역민들이 안고 갈 뿐이다. 이 고리를 제대로 끊어 내지 않는 한, 폐광지역 사례가 또 다시 되풀이될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시대의 정의로운 전환은 과연 무엇을 담보해야 하는가?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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