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시인, 마음의 고향 춘천 지인…”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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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안진 시인, 마음의 고향 춘천 지인…”보고 싶었다“

    MS투데이 통해 반세기 만의 재회 ‘감동’
    유 시인, ”친 자매 같은 이웃 사촌“
    최복순 씨, ”때때로 함께 살던 때 그리워“

    • 입력 2021.06.12 00:01
    • 수정 2021.06.14 06:29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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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유안진 시인과 최복순 씨가 반세기 만에 춘천에서 재회했다. (사진=박지영 기자)
    지난 9일 유안진 시인과 최복순 씨가 반세기 만에 춘천에서 재회했다. (사진=박지영 기자)

    “며칠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요. 본 적 없는 좋은 얼굴로 웃고 계시더라고요. 꿈에 나온 어머니가 저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하시는데 그 말에 잠이 깼어요. 그로부터 몇일 후 복순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유안진 시인(80·서울대 명예교수)은 마음의 고향 춘천에서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인연이지만 소식이 끊겼던 최복순(64) 씨와 반세기 만에 재회했다. MS투데이는 지난 9일 두 사람의 만남에 동행했다.

    남춘천역에서 조우한 유 시인은 최 씨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재회의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잠시 후 경춘선 열차에서 내린 최 씨는 10대 후반의 풋풋했던 모습을 어렴풋이 간직한 채 유 시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두 사람은 감격의 포옹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유 시인은 “어머니가 저희 자매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너희가 형편이 되면 복순이를 찾아서 꼭 보답을 해줘라’였다”고 회고했다.

     

    지난 9일 남춘천역에서 유안진 시인과 최복순 씨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지난 9일 남춘천역에서 유안진 시인과 최복순 씨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유 시인은 어머니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바쁘게 살다 보니 쉽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고 한다. 유 시인은 작고하신 어머니에 이어 남편도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자녀들도 외국에 살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 씨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고 한다.

    특히 유 시인의 할아버지 병수발까지 하며 극진히 지병을 간호했던 최 씨는 그들의 가족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마음의 짐이었다. 유 시인의 모친은 가정의 대소사를 함께 챙기며 말동무가 되어줬던 덕분인지 집을 거쳐간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최 씨만을 애틋해하고 생각했고 안부를 걱정했다. 유안진 시인은 “어머니가 성당에 가서 항상 ‘복순이가 좋은 신랑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따로 하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신동면 이웃주민 제보로 극적인 재회 이뤄져

    유 시인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최 씨를 찾기 위해 경찰서 등을 오가며 노력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의 벽에 부딪혀 아무런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또 최 씨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춘천 신동면’이 본가인 것이 정보의 전부였던 만큼 행방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고 한다.

    이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친 이영춘(80·전 원주여고 교장) 시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시인은 매달 열리는 통장회의에 직접 나가 수소문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그러던 중 MS투데이가 5월 20일자로 게재한 <유안진 시인, “춘천 신동면 최복순 씨를 찾습니다”> 보도 이후 두 사람간의 인연은 다시 맺어졌다.

     

    유안진 시인이 MS투데이에 실린 최복순 씨를 찾는 기사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사진 촬영 순간에만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유안진 시인이 MS투데이에 실린 최복순 씨를 찾는 기사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사진 촬영 순간에만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두사람의 재회는 춘천시 신동면에 거주하는 이호상(78) 씨의 제보를 받은 MS투데이가 유안진 시인, 최복순 씨와 여러 차례의 통화를 나눈 끝에 성사됐다.

    유 시인은 ‘엉뚱한 사람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거짓 제보가 아닐까’라는 우려도 했지만,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그는 “인터넷과 신문의 효과를 처음 체험했다”며 엄지척을 했다.

    ‘만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시인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연락이 끊겼던 소중한 인연을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다”며 “정이 많이 들어서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최 씨도 “보고 싶었고, 저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고마워 울었다”고 말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이 모습을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이영춘 시인은 “오래 전 있었던 일이고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일텐데도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느껴졌다”며 “두 분이 다시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돼 기쁘고, 자매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흐뭇해했다.

    ■반세기 세월 속에서도 그 시절 추억은 또렷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최복순 씨는 두사람이 인연을 맺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 로터리 부근의 개운사 입구에 위치한 단독주택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집도 깨끗하고 좋았었는데”라며 유 시인의 집에 자주 왕래했던 친척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언급하고 안부도 물으며 추억을 되살려냈다.

    최 씨가 2층 집에 살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자 유 시인은 “그곳에 살다 몇 년 후 잠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연탄을 가는 수고도 없는 데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따뜻해 바닥에서 자도 되겠다며 마냥 좋아하던 모습이 선하다”며 “그 모습을 떠올리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 생각이 든다”고 미안함을 드러냈다.

     

    최복순 씨(왼쪽)와 유안진 시인이 MS투데이 본사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최복순 씨(왼쪽)와 유안진 시인이 MS투데이 본사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유 시인은 최 씨가 어느 날 적금을 찾더니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부츠를 사 신고 좋아하던 모습이 남아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저걸 사서 신을 생각도 못했는데, 얼마나 신고 싶었으면 샀을까 생각했었다”며 “당시 우리 어머니는 철딱서니 없게 저렇게 비싼 신발을 샀냐고 하셨는데, 그때도 제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사고 싶었으면 샀겠어’라고 말했었다”고 기억해 냈다.

    이어 “그로부터 며칠 후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복순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며 춘천으로 갔다’고 하시더라”며 “지금 돌아보면 자기 딴에는 적금도 찾고 집에 갈 준비를 한 것 같은데 저는 몰랐다”고 말했다. 

    춘천으로 온 이후 유 시인의 집에 살았던 시절을 그리워 한 최 씨는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연락처도 몰랐던 상황이었다”고 당시의 아쉬움을 전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정이 오가는 대화를 나누며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유 시인은 최 씨를 찾는 데 도움을 준 이영춘 시인과 본지 등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우리 뿐만 아니라 먼 친척 간이나 친구, 신세를 진 사람, 이웃집에 살다 연락이 끊긴 사람 등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앞으로도 MS투데이가 우리 삶에 도움되는 일을 많이 할 것 같아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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