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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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수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 입력 2021.06.09 00:00
    • 수정 2021.06.11 06:46
    • 기자명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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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수능이 끝난 고3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비행기도 군사훈련도 멈추게 하는, 국가적 행사로 치러지는 시험이 수능이다. 그런데도 수능 끝난 고3 교실 어디서도 문제 분석이나 풀이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결과물인 점수이기 때문이다. 이름과는 달리 ‘수학능력’의 기준도 없다. 그저 소수점 아래까지 짜내어 순위를 매기면 그만이다. 수능 설계자도 점수 10점 차이가 결코 능력 차이가 아니라 했지만 현실에서 점수는 신앙이 되었다.

    전통적인 교육은 이 수능처럼 형식적 결과물인 점수를 중시했다. 개인을 넘어 학교와 지역에까지 점수로 순위를 매기고 그것으로 교육성과를 평가했다. 많은 학생이 죄도 없이 죄인인 듯 고개 숙이고 “평균 깎아 먹는 놈”이라는 놀림을 감수해야 했다. 개인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科擧)시험부터 이어오는 특유의 능력주의와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학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계량화된 성적만 중시하는 획일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반성에 기초한 다양한 노력이 교실을 바꾸었다. 마침, 교육과정을 비틀던 대학입시도 수시모집 중심으로 바뀌어 수능의 비중이 줄어들며 고등학교에서도 수업 모습,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시모집은 초기에 불공정 논란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불공정 요소들은 대부분 제거되었고 지금도 개선 중이다. 결코 완벽한 제도는 아니나 가르치는 사람이 평가하고 그것이 입시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교육과정과 평가가 따로 놀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비정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교사가 평균 점수가 아니라 학생 개인의 특성에 집중하게 하고 학생도 잘 할 수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초·중 교실에서는 지식 주입보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개인을 성장시키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

    근본적으로 공정한 입시제도란 불가능하다. 모든 선발 체제는 극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사회경제적 배경에 크게 좌우된다. 수능이 특히 그렇다는 것은 여러 통계와 연구가 증명한다. 하루아침에 입시가 폐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공정하지도 못한 점수 집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수시모집이라는 제도이다.

    강원도교육청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며 변화된 교육환경에 부합하도록 정책을 펼쳐왔다. 초등학교에서는 한글, 영어, 수학 등 기초 학력 책임교육을 꾸준하게 추진해 성과를 얻고 있다. 중·고교에서는 수업과 평가를 개선하고 평가 내용을 기록과 일체화시키는 노력으로 교육과정을 내실화하고 교육과정 이수 결과를 근거로 진로개척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대입지원관은 도내 전역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성과를 얻고 있고, 강원진학지원센터는 독자 프로그램 개발, 자료 제공, 상담으로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능 최저기준이나 정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방과 후 수업과 자기주도적 학습실 등으로 효과적 수능 준비를 돕고 있다. 취업지원센터와 취업지원관 운영으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의 진로개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것을 제공하고 맹목적 평균 올리기 같은 구태는 버린 것이다. 우리 강원도 학생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고 있으며 합당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다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교육이 할 일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를 함양하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교육은 더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사회를 탐색할 나침반과 도구를 만들도록 돕는 것이며 그 핵심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지식전달을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에 바탕을 둬 나와 타인의 삶을 함께 고양할 수 있는 창의성, 문제해결력, 협동, 책임, 갈등관리 같은 역량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직 코로나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전면 등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식을 전달하고 축적된 지식의 양으로 평가되는 것이 교육이라면 원격수업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원격수업의 한계에 직면해 전면 등교가 요구된다는 것은 교육이 지식전달을 넘어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고립에서 오는 정서적 불안, 사회성 형성의 어려움 같은 것은 학교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또 하나 사회적 관심사인, 원격수업에서의 교육 격차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평등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학교가, 공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끌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본 축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코로나 초기에는 ‘이 와중에도 학교에 가야 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주된 의견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학교는 가야한다’는 의견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래도 가야 하는 학교는 개인과 집단을 소수점 이하까지 점수 매겨서 줄 세우기 하는 곳은 아니다. 그것은 원격수업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학교’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의 행복한 내일을 위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교육의 대전환을 도모해야 하는 이때, 아직도 점수와 순위만으로 교육을 평가하려는 시각이 있어 안타깝다. 심지어는 수능과 정시모집만이 인정할 만한 교육의 성과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까지 접하게 된다. 맹목적인 경쟁은 최후의 승자마저 불행하게 만든다.

    현 제도 내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정상 교육과정 속에서 행복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 학생 하나하나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교육, 가르치는 사람이 평가하고 그것으로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닐까 한다. 이런 구조를 튼튼히 만들고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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