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당신 혼자만 우울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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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당신 혼자만 우울한 게 아니다

    • 입력 2021.05.31 00:00
    • 수정 2021.06.01 06:51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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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말도 늙어갑니다. 서서히 쓰임새가 줄다가 종내는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말 중 하나가 ‘명랑’입니다. ‘유쾌하고 쾌활함’ 또는 ‘밝고 환함’이란 뜻의 이 말을 요즘은 참으로 만나기 힘듭니다. 톡톡 튀는 듯한 울림을 가진 이 말은 거의 사어(死語)가 된 느낌입니다. 아마도 3포세대니 5포세대니 하는 말까지 나오는 세태에 코로나 사태까지 닥쳐 더욱 그런 듯합니다.

    반면 ‘명랑’의 반대라 할 ‘우울’은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립니다.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종종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로요. 그래서 이번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유쾌한 우울증의 세계』(존 모 지음, 모멘토). ‘유쾌한 우울증’이란 이 희한한 제목의 지은이는 미국의 방송인이자 작가입니다. “대학 학위를 지닌 백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성공한 인물이죠. 외견상 우울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중학교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답니다. 두 번의 치명적 사고 경험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그 원인이라는데 그는 “슬펐다. 불안하기도 했다. 우울하기도 했다…그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것이 치료 가능한 병의 증상이라는 걸, 건강 문제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고 지난 일을 기억합니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을까요. 

    여러 치료사를 만나고, 약을 먹는 등 우울증에 시달리던 지은이는 2016년부터는 아예 ‘유쾌한 우울증의 세계’란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우울증을 앓는 유명 인사들을 출연시켜 경험을 나누는 등 우울증과 정면으로 씨름하고 있답니다. 그 방송 내용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 내용은 우울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안고 인생을 살아왔다. ‘내려놓으세요’ 단세포 인간들은 말한다. 아무도 그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처럼.…이에 대한 나의 답은 ‘물정 모르는 소리 말고 꺼지세요’일 테다”하는 식입니다.
     
    역시 우울증을 앓는 코미디언 마이크 드러커 관련 구절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자살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친구가 페이스북에 그들 자신에 관한 족히 세 단락은 되는 글을 올릴 것이며 내 죽음을 가지고 ‘좋아요’ 200개를 받는 녀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만나면 다소 냉소적으로 들리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며 고개가 끄덕여지죠.

    제목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이 책, 심리치료 가이드도 아니고 명상을 위한 에세이집도 아닙니다. 굳이 책 성격을 규정하자면 ‘우울증 공생 투쟁기’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그러나 칙칙하지 않게 털어놓는 덕분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웃픈’ 책이지요.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가르치려 들지는 않지만 같은 아픔을 겪는 ‘전우’의 경험담은 그만큼 진솔하고, 덕분에 작지 않은 위로를 줍니다.

    “우울증이 속삭이는 수많은 거짓말을 통틀어 가장 믿기 쉬운 건 ‘너는 망했다’라는 말이다…좋은 게 하나도 없어. 과거에도 똑같았지, 그러니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게 합당해…더 악화되기만 할 거야.”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자살을 시도한 형 그리고 본인 역시 자살 문턱까지 갔던 지은이는 “이런 속삭임을 멈추지 못하면 논리적인 결론은 모든 걸 끝내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지은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해 보입니다.

    “머릿속의 짙은 연무가, 내 성격의 본질적인 일부가 아니라 병이라니. 나는 못된 게 아니었다. 아픈 거였다.” 의사에게서 우울증 진단을 처음 받은 지은이의 소감. 이건 같은 환우들에게 보내는 것이겠죠. 

    “중독, 우울, 조현병은 전부 선택이 아니라 질병이다. 조현병에 걸리겠다고 손을 번쩍 들어 자청한 사람은 없다.…문제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 행동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하지만 무게가 4, 50킬로그램 나가는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들을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꾸짖거나 경주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고 탓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러지 말고 그들이 그 끔찍한 신발을 벗을 수 있게 돕자.” 이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 싶습니다.

    우울증을 앓든 아니든 도움과 위로, 그리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제법 ‘명랑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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