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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분, 삶에 변화를 주려는 분들이 와서 함께 서투름을 쌓아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육림고개를 올라 주택가로 들어서면 골목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첫서재'는 문정윤(38) 대표와 남형석(39) 기획자 부부가 지난 3월 문을 연 공유서재다. MBC 기자인 남형석 기획자는 휴직을 기회로 아내 문정윤 대표와 함께 서울에서 춘천으로 내려왔다.
첫서재는 남 기획자가 개인 서재를 만들고 싶다는 꿈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서재를 만들면서 많은 애정과 돈이 들어갔는데 만들고 나니 이곳을 누군가에게 내놓아도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책을 읽으며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사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니 많은 분이 이용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유서재로 탈바꿈했다”고 전했다.
▶담백한 공간에서 서투름을 쌓다
‘첫서재’라는 이름보다 먼저 정해졌던 것은 ‘서투름이 쌓인다’는 슬로건이었다. 남 기획자는 “서재 운영이 처음이고 서울을 떠나 사는 것도 처음이어서 이곳이 우리의 서투름을 쌓는 공간처럼 느껴졌다”며 “우리와 같이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하거나 삶에 변화를 주려는 분들이 이곳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커피,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첫서재는 음료값 대신 공간값을 받는다. 흔히들 아는 '북카페'라는 이름보다 '공유서재'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는 카페보다 서재라는 정체성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 기획자는 “첫서재를 ‘책이 있는 카페’보다는 ‘음료를 내어드리는 서재’로서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음료 1잔이 제공되고 서재를 2시간 이용하는 공간값은 5000원이지만,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써서 대문 앞 우체통에 넣으면 공간값을 받지 않는다.
▶3개의 ‘첫’ 프로젝트
첫서재는 ‘첫서재’, ‘첫다락’, ‘첫작품’이라는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첫서재 프로젝트는 ‘글책방’과 ‘그림책방’이 있다. 글책방은 남 기획자가 꾸민 방으로, 소설, 시, 에세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림책 테라피스트인 문 대표가 꾸민 그림책방은 성인과 아동을 위한 그림책들이 있다.
첫다락 프로젝트는 첫서재에서 숙박할 수 있는 다락방 북스테이다. 1주일에 1명씩 받는 숙박객은 각자의 사연을 보낸 사람 중에 선정하며 숙박비는 5년 뒤 돈이 아닌 것으로 내면 된다.
첫작품 프로젝트는 창작자들의 첫작품이나 판매처가 없는 작품들을 대신 팔아 주는 것이다. 첫서재에서는 현재 12명의 창작자 작품을 판매 중이며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남 기획자는 기억에 남는 첫다락 프로젝트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지만,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준비하다가 결국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기로 한 사연이었다”며 “그 결심의 시작을 여기 와서 함께 하고 싶다고 해서 모셨다”고 말했다. 이어 “변치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 5년 뒤 최고의 작품을 주기로 했는데 받았을 때 만족감은 숙박비 그 이상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따스한 세상을 위한 따스한 실험
남 기획자는 소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낡고 신비한 분위기의 집, 그림책 '프레드릭' 속 생쥐가 햇살, 색깔, 이야기를 수집하는 모습을 참고해 첫서재를 기획하게 됐다. 이 공간에는 ‘사연(이야기)’이나 ‘색깔’처럼 돈보다 귀한 가치를 쌓아가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생쥐처럼 이야기를 모으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공간값 대신 받는 편지다. 대신 몇 가지 특이한 조건이 붙는다. 첫 순간에 대한 기억을 담아야 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부칠 수 없는 편지여야 한다. 또 편지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공개될 수도 있다.
남 기획자는 “집필을 꿈꾸는데 나는 서울에서 평범하게 자라 색깔도 이야기도 없는 사람 같았다”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편지로 받는 데에는 글의 소재를 모으고 싶다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첫다락 프로젝트(북스테이)를 통해서도 다른 사람의 현재 이야기와 5년 뒤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손님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경험을 전해주는 것이 남 기획자의 바람이다. 한편 첫서재는 내년 가을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배지인 기자 bji0172@m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