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아카데미 스타’ 윤여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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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아카데미 스타’ 윤여정의 힘

    • 입력 2021.05.06 00:00
    • 수정 2021.05.08 06:59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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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윤여정(74)이 지난달 26일(한국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보여준 쾌거다.

    한인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았던 윤여정의 인생 연륜과 통찰이 담겨있는 수상소감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윤여정을 글로벌 배우로 만든 힘은 50여년간 걸어온 연기자로서의 자세와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

    윤여정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전형적인 연기를 하지 않은 배우라고 할만하다. 1966년에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윤여정은 유독 비범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청춘스타로 데뷔하는 여배우는 멜로 역할을 맡아 주목을 받고 여주인공을 하는 등 어느 정도 역할과 수순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윤여정은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1971)에서 한 중산층 가정을 파멸로 몰고가는 가정부 명자를 연기했다. 윤여정은 20대 중반의 나이로 명자의 광기와 집착을 대담하게 표현했다. 같은해 154부작으로 이뤄진 MBC 일일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을 연기했다.

    두 작품에서 윤여정이 맡은 역할의 공통점은 악녀였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당시 분위기로는 악녀 역할을 하면 리스크가 매우 컸다. ‘역할=실제 그 사람’으로 보던 시절이었다. 식당에서 대중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여정은 스타의 길을 가기보다는 배우, 아티스트의 길을 착실하게 걸어나갔다.

    1975년 조영남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면서 10여년간 공백기가 생겼다. 이혼 후 귀국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연예계에 복귀하면서 선택한 작품은 박철수 감독의 ‘에미’(1985)였다. 윤여정의 배역은 딸 나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인신매매단을 집요하게 추적해 살해한 후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홍여사 역이었다. 이처럼 윤여정은 ‘이유있는 센 캐(센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2016년에는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으로 분해 깊은 혼란과 복잡한 사연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해에는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에는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최근에도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센스8’에 출연했고,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끝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윤여정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철저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며 투철한 직업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그 자체가 여배우들에게는 롤모델이다.

    게다가 나이를 먹었다고 후배에게 대접을 받으려는 꼰대 짓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자칫 깐깐한 선배로 보일 수 있지만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후배에게 소통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경험 많은 선배의 솔직함을 나영석 PD가 진작에 간파하고 리얼리티 예능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시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윤여정은 tvN ‘윤스테이’의 사장님답게 꼼꼼하게 필요한 사항들을 체크하고 외국 손님과도 유창한 영어로 소통했다. 외국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등 디테일도 챙겼다.

    윤여정처럼 영화와 예능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노년의 도전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각별하다. 특히 꾸준히 전형성을 깨는 연기를 해왔던 윤여정이 자연스럽게 도착한 작품이 ‘미나리’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윤여정은 수상소감의 여운도 오래 간다. 멋있는 말 몇마디 남긴다고 그럴 리는 없다. 수상 소감이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재치 있는 언변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인생철학이며, 연기의 소신이자 밑거름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미나리’에서 윤여정이 맡은 순자를 보편적인 인간애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승화시키는 힘이 됐다. 결국 로컬문화가 보편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니 뉴욕타임즈가 “윤여정 씨가 재치있는 소감으로 경쟁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액면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윤여정은 오랜 세월 많은 노력을 하며 실력을 쌓아올렸다. 세상에 펑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대사를 익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 연기의 시작이었고, 나중에는 절실해야 연기가 잘 된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했다. 

    윤여정은 60세를 전후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바뀌었다고 했다. 60세 이전은 계산을 했고 성과를 생각했다. 이제는 사람이 좋으면 한다고 했다.

     

    윤여정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최고라는 말 싫어한다. 1등, 최고 많이 하는데 우리 다 최중하면 안되나. 전부 골고루 잘 살면 안되나”고 답했다.

    윤여정은 “후보에 오른 배우들은 경쟁자가 아니다. 글렌 클로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 우린 서로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했기 때문에 경쟁할 수 없다. 자기 전쟁에서 각자 다 승자인 거야. 나는 그냥 운이 조금 좋았던 거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윤여정의 말은 날 것이 주는 힘이 느껴진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여기에 경험과 연륜이 더해져 서양인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그래서 말 실수를 해도 자연스럽다.

    그의 인생신조는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다. ‘무지개도 일곱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게 중요하다. 인종 구분하지 말고 무지개 처럼 색을 합쳐 좋은 색깔을 만들자’

    이런 말들은 얼핏 들어보면 평범한 내용같지만 문화를 꽃피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다원주의 가치를 50여년의 배우 생활을 통해 실천해왔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문화는 발전할 수 없다.

    꼰대란 뭔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과신하거나 그것들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를 신조로 삼는 이 시니어 배우는 그럴 수가 없다. 이 점이 그를 ‘꼰대’와 가장 거리가 먼 ‘어른 친구’로 만들게 한 매력 포인트다.

    나도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돼’를 생활속에서 실천해야겠다. 기성세대가 이런 생각을 가져야 세대간 소통이 더 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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