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작가의 직무와 작가의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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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작가의 직무와 작가의 품위

    • 입력 2021.05.02 00:00
    • 수정 2021.05.03 06:16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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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작가적 품위 / 오인덕

    작가는 나이 들수록/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초심을 벗어나/ 나잇값 하는 순간/ 작품은 사라지고/ 늙고 냄새 나는 노인만 남게 된다. (한국작가회의 시선집 <못 부친 편지>에 수록)

    경영대학 동창 모임에 누가 이 시를 올렸다. 어디 작가만 그러겠느냐, 예순이 넘은 우리 모두의 일이지, 하는 글이 올라오며 제법 묵직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잖아 얼마 전 북 토크에서도 글을 쓰는 자의 초심을 다시 떠올린 적이 있었다. 후배 작가가 30여 년 전 등단 시절을 물어 그때 쓴 신인상 당선소감을 말했다.

    “작가의 직무유기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조차 사랑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 호루라기는 불었고, 출발 선상에서 나는 말한다. 절대 직무유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작가로서 나의 초심일 것이다. 나이 든 다음에도 저 각오를 잊은 적이 없지만, 근래에 그것을 처음처럼 다시 다졌던 것은 2019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저녁 춘천 몸짓극장에서였다. 그날 춘천에 거주하고 있는 하창수 작가의 진행으로 춘천이 성장시키고 길렀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작가는 어느 한 도시가 낳을 수는 있어도 성장시키고 길러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춘천을 가장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닌 한수산 작가의 토크쇼가 있었다. 두 시간가량 작가 대담이 끝나고, 무대 전면에 영화 엔딩 자막처럼 한수산 선생의 작품 목록이 죽 올라가는데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월의 끝>, <부초>, <어떤 개인 날>, <바다로 간 목마>, <해빙기의 아침>, <가을 나그네>, <겨울 숲>, <모든 것에 이별을>, <가을꽃 겨울나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다>, <푸른 수첩>, <먼 그날 같은 오늘>, <이별 없는 아침>, <모래 위의 집>, <욕망의 거리>, <거리의 악사>, <사랑의 이름으로>, <진흙과 갈대>, <밤에서 밤으로>, <아프리카여 안녕>, <서울의 꿈>, <타인의 얼굴>, <마지막 찻잔>, <엘리아의 돌계단>, <유민>, <400년의 약속>, <용서를 위하여>, <말 탄 자 지나가다>, <까마귀>, <군함도>……

    내가 적은 것은 차례도 맞지 않고 빠진 목록도 많을 것이다. 한두 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목록을 장편소설로 아래에서 위로 길고 긴 벽화처럼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엔딩 자막이 끝날 때까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마음 안에 오직 존경심만 가득 채우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 작가의 인생이 그의 작품 목록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군부독재 시절 야만적인 폭압 속에서도 저렇게 쉼 없이 써온 사람이 바로 작가이다. 그런 시기를 건너와 나이 든 지금에도 쉼 없이 쓰는 사람이 작가인 것이다. 다른 것이 없다. 나이 들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쓰는 것이 작가의 직무고 작가의 품위인 것이다.

    단편소설 몇 편으로 이런저런 문학상 몇 개를 받은 걸로 본인 스스로 한국문학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땅의 나이 든 작가들과 지금 50대 60대에 이른 한국 중견작가들은 저 목록을 보면 무엇을 느낄까. 변명할 말이야 많고 다르겠지만, 나는 도대체 무얼 하느라고 매진하지 못했던 것인지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엄중히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 나라 오래 산 작가들은 약간의 문재로 곧 사라질 명성을 얻은 후에는 자기 이름이 붙은 기념관 건립에 매진하거나, 전집이나 자기 이름의 문학상을 만드는 동상 작업에 혈안이 되어 있기 일쑤며……’

    춘천에 거주하고 있는, 글뿐 아니라 세상사에 올곧기로 정평이 나 있는 최성각 작가가 춘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문화매거진 pot>에 남미의 인도주의적이고 실천주의적 작가 세풀베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쓴 촌철살인과 같은 글이다. 어쩌다 저런 모습이 이 땅의 나이든 작가들 사이에 작품보다 더 공을 들이는 필생의 업이 되어버렸는지, 그래서 살아생전에 생사당과 같은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과연 작가의 품위를 높여주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작가의 직무와 품위에 대해 생각해보는 봄이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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