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기획특집] 4.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장애인은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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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날 기획특집] 4.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장애인은 소외"

    MS투데이, 박성수 강원명진학교 교사 인터뷰
    불법 주정차‧전동킥보드에 매일 걷는 길도 ‘위험’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할 바에 점자블록 교체해야
    카페‧마트 무인시스템 확산…“장애인도 쓰고 싶다”

    • 입력 2021.04.20 00:00
    • 수정 2021.04.21 17:43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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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수 강원명진학교 교사가 4월 12일 명진학교 교내에서 MS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박성수 강원명진학교 교사가 명진학교에서 MS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지영 기자)

    매일 낯선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걷는 길은 매번 똑같다. 명진학교 교사이자 1급 시각장애인 박성수(59)씨. 그는 자신에 집에서 일터인 강원 명진학교까지 같은 길로 수천 번 출근했다. 그날도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새로 생긴 벽에 부딪혔다. 아파트 입구에 중형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동차는 양반이라고 말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차보다 위험한 건 보도에 방치된 자전거와 오토바이 같은 거에요. 이건 주차장소가 없거나 정해져 있지 않아서 보도에 그냥 세워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흰 지팡이(케인)가 바큇살 사이에 끼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에 하나 더 생겼죠. 전동킥보드예요. 세워져 있는 것도 위험하지만 누워 있으면 인도에 차지하는 면적도 커서 위험합니다. 그러니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가능하면 실내로 가져가시거나 실외에 두셔야 한다면 최대한 가로수 쪽으로 붙여서 세워주시면 좋겠어요. 가끔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인도에서 차가 다니는 거랑 비슷해요. 저희에겐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옆으로 눕혀져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공유 전동킥보드를 볼 수 있다. 지난해 공유 전동킥보드가 전국에 도입된 이후 사용과 관리의 문제가 많다. 길 위에 방치된 전동킥보드는 시각장애인과 교통약자들에게 흉기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전동킥보드는 바로 치울 수 있지만 진로를 방해하는 보도블록은 치울 수도 없다.

     

    박성수 씨는 잘 느껴지지 않는 점자블록 대신 보도 끝 연석을 따라 길을 걷는다. (영상=박지영 기자)
    박성수 씨는 잘 느껴지지 않는 점자블록 대신 보도 끝 연석을 따라 길을 걷는다. (영상=박지영 기자)

    “시각장애인은 발바닥으로도 점자블록을 느껴요. 길에 튀어나온 것을 밟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우리가 믿는 거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하철역 같은 실내에선 점자블록의 돌출이 잘 느껴집니다. 하지만 길에서는 튀어나온 건 점자블록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점자블록보다 더 튀어나온 보도블록도 많아요. 사실상 점자블록이 의미를 잃는 거죠. 이럴 땐 차라리 케인을 연석에 대고 길을 따라 쭉 걷는 게 더 알기 쉬워요.”

    과거에는 지자체 예산이 남아돌아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한다는 시민들의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할 것은 점자블록이다.

    “어설프게 튀어나온 점자블록 때문에 걷기가 더 힘들어요. 이마저도 돌출이 닳아 일반 보도블록과 똑같이 된 것도 흔해요. 점자블록과 일반 보도블록이 헷갈려서 점자블록을 믿고 걷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실내외 돌출 높이에 차이를 둬 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점자블록 옆 울퉁불퉁한 보도. 점자블록 돌출을 감지하기 어렵다. (사진=조아서 기자)
    점자블록 옆 울퉁불퉁한 보도. 점자블록 돌출을 감지하기 어렵다. (사진=조아서 기자)

    그는 실내·외 모두 점형블록 돌출은 6mm(±1mm), 선형블록 돌출은 5mm(±1mm)로 높이를 일괄 적용하는 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점자블록의 돌출을 높인다면 비장애인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그는 일반적인 정책에서도 장애인과의 소통은 항상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에 키오스크를 써본적이 있습니다. 기기에서 음성이 안내하는 대로 장애인 카드를 올려두고 투입구에 현금도 넣었더니 마지막 단계에서 ‘화면을 터치해주세요’라고 안내 음성이 나오더라고요. 황당했죠. 터치스크린은 만져봐도 뭘 눌러야 할지 알 수 없잖아요.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장애인에 대해 ‘성의’만 보였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음성지원만 되면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음성지원과 더불어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의 '성의가 없다'라는 말은 '소통이 없다'와 같다. 사전에 장애인과 이야기해서 서비스를 설계하고 장애인들이 직접 사용하게 하면 이런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있다.

    공공기관에 설치되는 무인민원발급기는 장애인 키패드, 시각장애인 음성안내, 청각장애인용 확인 메시지 제공, 점자 라벨, 이어폰소켓 등을 필수규격으로 고시한다. 하지만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에 설치된 3843대의 무인민원발급기 중 필수규격을 적용하고 있는 비율은 57.5%에 불과했다.

    강원도는 190개 무인민원발급기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는 61%(115대), 점자 라벨은 52%(99대) 적용하는데 그쳤다. 공공 서비스를 비롯해서 민간 서비스까지, 장애인들의 소통과 참여없는 무인 시스템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춘천시민이 셀프계산대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배상철 기자)
    춘천시민이 셀프계산대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배상철 기자)

    그의 걱정은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인 시스템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카페, 마트, PC방, 빨래방, 숙박업소 등 일상의 다양한 분야에서 셀프 계산대,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이에요. 앞으로 키오스크가 더 늘어나면 키오스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장애인들이 더 많아지겠죠. 주문조차 누군가 도와줘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시각장애인은 그냥 일반 주문대로 가서 주문하는 것이 나을 수 있어요. 그나마도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요. 무인 점포의 증가는 사람들에게 진보일 수 있으나 장애인에게는 퇴보입니다.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장애인들은 소외되고 있어요.”

    비단 시각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면의 위치가 높아 볼 수 없거나 팔이 닿지 않는 휠체어 장애인도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규모는 2006년 600억원에서 2018년 3000억원으로 5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편의성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즉 표준없이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이 빠르게 개정되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시·도에서 조례나 규칙으로 먼저 도입할 수 있으니까 ‘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손 놓고 있지 말고 ‘우리 시·도에서 먼저 제정할 수는 없는가’ 한번 더 검토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장애인들이 불편을 신고할 수 있는 전용 신고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발적으로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저희가 꾸준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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