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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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황무지

    • 입력 2021.04.14 00:00
    • 수정 2021.04.15 14:12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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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

                             T.S.엘리어트 (황동규 역)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생명을 대어주었다
    슈타른버거 호湖*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중략)---

    *T.S.엘리어트:(1888-1965)미국출생. 영국시인. 대표시집「황무지」,「네 개의 사중주」,외 다수.1948년‘노벨문학상수상.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20세기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으로 현대시를 지배해 온 T.S.엘리어트의 ‘황무지(荒蕪地)’란 시의 일부이다. ‘황무지’는 원작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는 5부 중 제1부에 해당하는 「죽은 자의 매장埋葬」이란 시의 앞부분이다.

    사실 이 시는 현대문명에 대한 통찰로부터 종교, 철학,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의 양식과 의식을 상징적으로 환유한 산문시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인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곧잘 이 시를 읊조린다. 신(神)이 내린다는 시의 첫 행,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이 명구(名句) 때문인 것 같다. 저마다 4월에 대한 어떤 ‘상처’와 ‘회의’와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초조’, 또는 ‘실패’에 대한 치유의 한숨과도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60년대 4.19를 겪었던 한 세대는 그들만의 불운을 형상화한 구원가(救援歌)와도 같이 ‘황무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 든 시였다. 실제로 이 작품, ‘황무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정신적 황폐’와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와 ‘생산성 없는 성性’과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시라고 역자(譯者)는 해석한다. 그런 측면으로 볼 때 현대인들의 정신적 삶의 고갈과 황폐를 이렇게 깊이 있게 천착한 엘리어트의 인식에 깊이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시가 우리에게 절망에 대한 공감인식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주는 시적 사유의 그 깊이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일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봄비’같은 생명으로 “마른 구근球根으로 목숨을 키워 주었”듯이 새 생명을 키워주는 일이다. 
     
    뮌헨 부근의 호수이며 휴양지로 유명한 “슈타른버거호湖*너머로 소나기와 함께/갑자기 여름이 찾아왔”듯이---, 지금 우리들 각자의 삶이 순간순간 메마르고 황폐하다 하더라도 ‘마른 땅에 비가 오고, 뿌리를 내리듯이’ 언제나 희망은 우리들 곁에 있음을 상기한다. 메마른 돌 속에서도 물 흐르는 숨소리가 들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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