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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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뒤

    • 입력 2021.03.31 00:00
    • 수정 2021.04.01 06:31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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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수 우

     

    앞서간 사람이 떨구고 간 담뱃불빛

    그는 모를 것이다 담뱃불이 자신을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최후가 아름답고 아프다는 사실을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한 발짝 뒤에서 오고 있는 은사시 낙엽들

    두 발짝 뒤에서 보고 있는 유리창들

    세 발짝 뒤에서 듣고 있는 빈 물병들

    상여 떠난 상가에서 버걱거리는 설거지 소리를 망연히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에서 걷는다
    물끄러미, 오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눈동자, 내게도 있을까

    신호등 건너다 고개 돌리면

    눈물 글썽이는, 허공이라는 눈

    *김수우:1995년「시와시학」등단*시집「몰락경전」「붉은 사하라」외 다수*현,부산「百年魚서원」대표.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시의 기능을 생각한다.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서정시인들의 형상은 바로 그 자신이며, 자신의 객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뒤」, 이 시는 화자의 웅숭깊고 그윽한 사유와 정서를 새로운 인식으로 환유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뒤’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많은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뒤가 깨끗해야 해!”라는 말로부터 시작하여 ‘배경’ ‘거래’ ‘음모’ ‘계산’ ‘자리’ 등등 상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문득, 요즘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우리의 영화 「미나리minari」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미나리 밭에서 뱀을 보고 놀라는 손자에게 윤여정이 던지는 말, “그냥 둬,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란다.” 이 말이 이 시의 한 구절과 오버랩 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것, 그것이다. 화자는 보편적인 진실을 사유(思惟)한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가짜를 앞세우고 진짜는 뒤에 숨기는 그 가짜의 방정식이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숨기려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것처럼 우리를 뒤에서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진실이어야 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은 뒤에서 걷는”것과 같은 믿음이다. 뒤에서 “물끄러미, 오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눈동자,”가 우리들 뒤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고 진정성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신호등 건너다 고개 돌리면/눈물 글썽이는, 허공이라는 눈” 뿐인, 그런 세상이 우리들 등 뒤에서 우리를 허망하게 할 때가 참 많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들 등 뒤에서 영혼처럼 반짝이는 “은사시 낙엽들” “유리창들” “빈 물병들” 그리고 “상가에서 버걱거리는 설거지 소리를 망연히 들으며” 살아야 한다. 진실을 향하여,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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