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남편이 내 일기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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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남편이 내 일기를 보았다

    • 입력 2021.02.22 00:00
    • 수정 2021.02.23 07:23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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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머네….” “같이 나온 언니가 더 예쁘네….”

    맞선 자리에 나온 청춘남녀가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이렇다면 이 끝은 보나마나겠죠.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옮겨 가진 두 사람만의 대화는 별말 없이 15분 만에 끝납니다. 그러고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고 “안녕히 가세요”란 짧은 인사만 나눈 채로요.

    집에 돌아온 여자는 “버릴 것 하나 없는 남자더라”라는 언니에게 “결혼은 내가 하지 언니가 하나”라며 불퉁거리고 남자는 ‘도도하고 차가운 입술을 꼭 다문’ 상대에게 주눅들었던 기억만 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지금 한집에 삽니다.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 가지고’(김경희·권승호 지음, Mr. J)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글의 제목은 ‘첫눈에 알아본다는 건 거짓말’로 공동저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이야기를 담은 겁니다. 제목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이 책은 고교 교사인 남편과 대학 상담실의 카운슬러인 아내의 ‘일기’를 추려 엮은 것입니다. 정확히는 아내의 일기에 남편이 ‘답글’을 다는 형식입니다.

    핀잔을 주는 듯한 제목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아내는 30여년간 일기를 썼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요. 순전히 추측이지만 남편이 하루는 우연히 아내의 일기를 본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일기를 추려서 책으로 내자고 부추긴 끝에 나온 책이라 남편에게 투정하는 듯한 제목이 나온 듯합니다. 뭐 보통은 남의 일기를 몰래 봤다면 형제간이라도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지만 어렸을 때 한 번씩 겪은 일 아닌가요. 책으로 내기에 이르렀으니 부부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여간 도타운 게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30년 넘게 살 부비며 살아온 이들이라서인지 운문 형식으로 정리한 책에는 은근한 사랑, 슬며시 나오는 웃음, 따뜻한 가르침이 배어 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장롱을 사 드리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결혼 한 달 반만의 첫 부부싸움이 장롱보다 비싼 무스탕 코트를 장모에게 사드리는 남편의 ‘발칙한 계산’으로 마무리되는 과정 등 읽다가 무릎을 치거나 가슴 한켠이 찔리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변기 이용법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은 또 어떻고요? 방광염 진단을 받은 아내는 의사에게서 변기 위생 상태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남편에게 앞으로 앉아서 소변을 보라 당부합니다. 이를 들은 남편이 “나더러 여자처럼 살라는 거야?”라며 불쑥 화를 내죠. 이에 아내는 “앉아서 소변보라는 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야? 그럼 대변은 왜 앉아서 보는 건데? 당신은 남자니까 대변도 서서 보는 게 맞지 않아?”라고 반박합니다. 이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집니다. 남편은 당연히 입을 꾹 닫지만 말입니다.

    이거 교육계에 종사하는 부부간에 오갈 대화인가 싶긴 하지만 어느 집에서든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란 글은 당당히 ‘앉아 쏴’를 요구하는 아내에게 섭섭하고 자존심도 상했던 남편이 그 편리함을 느낀 나머지 제자인 학생들에게 ‘앉아 쏴’를 적극 권장하기에 이르렀다는, 그리고 앞으로 이를 널리 알리는 ‘전도사’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끝납니다.

    일상에서 건져냈지만 깊은 뜻을 담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올바른 아이들로 자라길’에 실린   ‘닭다리 교육’이 좋은 예입니다. 아들딸과 통닭을 먹으려던 아내가 “좋은 건 서로 나눠 먹는 거야. 엄마도 닭다리 좋아해”라면 닭다리 하나를 먼저 손에 듭니다. 닭다리를 자기들이 하나씩 나눠 먹을 줄 알았던 남매는 발을 동동거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통닭 먹기를 거부하기에 이르죠. 그러자 엄마는 쓰레기통에 통닭을 버립니다. 아이들이 좋은 것을 나누고 양보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극약처방을 한 거죠. 억지로 먹은 닭다리가 딱 속에 걸린 듯해 소화제라도 먹고 자야겠다면서도 말입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교육은 교육, 통닭은 통닭이니 나는 절대 통닭을 버리지 않겠지만 아내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다이아몬드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니 나도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마음먹었답니다.

    부부 관계, 자녀교육, 고부 관계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보통사람들의 가정사에서 흔히 있을 수 있지만 웃음과 감동, 교훈이 적절히 가미된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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