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애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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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애인 있어요

    • 입력 2021.02.17 00:00
    • 수정 2021.02.18 16:26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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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인 있어요

                                                  홍성란

     노래자랑에 입상하신 여든한 살 할머니가 분홍 
    셔츠에 흰 바지 차려 입고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를 다소곳 환히 부르네 

     숨은 턱에 찼으나 손 모아 파르르 입술 모아 애인
    있어요, 말 못한 애인 있다니 여든넷 어머니 그늘 
    겹쳐오네 새치 뽑던 파마머리 젖가슴 뭉클 잡히던
    얼굴 연하고질(煙霞痼疾)이여, 희미한 내 노래여
    나도 애인 있어요, 춘천 어디 산비탈 가지마다 매어
    두신 실오리, 실오리 스쳐 돈담무심(頓淡無心) 내려온 
    데 목메도록 애인 있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이여,
    희미한 내 노래여 골도 좋아 물 시린 집, 다시
    못 올 흔들의자에 내가 버린 애인 있어요  

     나 날 적 궁전이었으나 내가 버린 폐가(廢家)있어요

    *홍성란:1989년중앙일보「중앙시조백일장장원」등단*시집「황진이 별곡」,「명자꽃」외다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눈물 나도록 애틋한 시입니다. 이 시의 작자는 어머니를 춘천 어디 산비탈 골짜기 요양원에 모셨는가 봅니다. 그런데 화자는 어느 날 노래자랑에 나온 한 할머니가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부르는 노래를 듣고 울컥 어머니 생각이 치밀어 올랐던 것 같습니다.

    이 시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화자가 자신이 ‘어머니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깊은 효심 때문입니다. 그 지극한 효심이 절절하게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노래자랑에 입상하신 여든한 살 할머니가/숨이 턱에 찼으나 손 모아 파르르/입술 모아 애인 있어요/말 못한 애인 있다”고 부르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화자는 “여든넷 어머니 그늘 겹쳐오네”라고 환유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젊었던 날 “새치 뽑던 파마머리/젖가슴 뭉클 잡히던 얼굴”이 겹쳐 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골도 좋아 물 시린 집,” “춘천 어디 산비탈” 요양원에 묘셔졌는가 봅니다.

    그 어머니가 마치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가 좋아 자연에 묻혀 있는 듯 ‘연하고질(煙霞痼疾)이여! 천석고항(泉石膏肓)이여!를 탄식하듯 화자는 “희미한 내 노래여/나도 애인 있어요”라면서 자연과 한 몸이 되신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산비탈 가지마다 매어두신 실오리,/실오리 스쳐” 가듯 어느 것 하나 탐탁하게 여기는 마음도 다 내려놓으신 듯 돈담무심(頓淡無心)한데, 그런데 이 화자는 “목메도록 애인 있어요”를 부릅니다.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셨을 것임에도 불효의 심상을 절절하게 애통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정서적 아픔의 극한입니다.

    “다시 못 올 흔들의자에 내가 버린 애인 있어요/나 날 적 궁전이었으나/내가 버린 폐가(廢家)있어요”라고 한탄합니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한 시인이 이토록 절절하게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에 대해 죄의식으로 절규하듯 한 노래(시)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요양원에 맡겨진 많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최후의 희망인 자식들이 언제 오려나? 언제 얼굴을 볼 수 있으려나? 침상 모서리에서 깜빡깜빡 하는 기억으로 희미하게 자식들의 얼굴을 떠 올리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휠체어를 탄 채, 혹은 흔들의자에 앉은 채, 하루 종일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비대면(untact) 시대에 허허로운 이분들의 빈 마음, 빈 공간을 어떻게 메워 드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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