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선다형 문제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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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선다형 문제풀이

    • 입력 2021.01.17 00:00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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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어떤 선거든 여러 개의 ‘선지(選支)’들에서 하나를 고른다는 점에서 객관식 문제풀이와 비슷하다. 둘이 ‘똑같지’ 않고 ‘비슷한’ 이유는 선거란 게 객관식 문제풀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선지들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골라낸 답이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에 근거한 ‘정답’이라고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이나 선호에 따라 고르는 것이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에도 객관식 문제풀이처럼 여러 개의 선지들이 주어진다는 것, 실제 그 안에 정답 혹은 정답에 준할 만한 선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들 가운데 하나를 고를 때 우리가 얼마만큼의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고민하는지, 정답을 고르는 특별한 노하우나 테크닉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일은 중요하다. 이는 객관식 문제풀이에서 답을 명확히 집어낼 수 없을 때 우리가 빠지게 되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이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 보는 것은 적어도 ‘이미지’만으로 답을 고르는 잘못을 막아준다. 이미지로 답을 고르는 건 “이게 정답일 것 같아”라는 막연함에 기댄 ‘찍기’와 다르지 않은 잘못 고를 확률이 매우 높은 선택행위다.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에서 다섯 개의 선지들에는 또렷한 특징이 있다. 선지들 중에 정답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선지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①정답의 요소를 풍부하게 갖고 있지만 지나치게 정답의 요소들만 있어서 정답임을 의심하게 만든다. ②정답의 요소와 오답의 요소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어서 오히려 헷갈린다. ③오답의 요소가 많아서 일단 오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살짝 섞인 정답의 요소에 걸려들면 “혹시 정답 아닐까?”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④누가 봐도 오답인데 오답이 너무 명백해서 “왜 이런 걸 선지에 끼워 넣었을까?”란 생각을 일으키게 만드는데 출제자를 의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시간을 잡아먹게 된다.

    가깝게는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에서 멀게는 다음 대선까지, 하마평(下馬評)에 오른 정치인들의 이름이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시도 때도 없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나온다, 나올 것 같다, 나와선 안 된다, 나오면 욕만 먹을 거다, 나오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등등 온갖 풍설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긴가민가한 인물이, 알 듯 말 듯한 ‘꾼’들이 들먹여진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를 영어로 candidate라고 하는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candidatus에서 비롯됐다. 하얀색 양초를 가리키는 candle도 같은 어원에 속한다. ‘희다’는 것은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탐욕이 없음”을 뜻하는 청렴결백(淸廉潔白)과 통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뚜렷하다”는 명명백백(明明白白)과 맥락이 닿는다. 요컨대 모름지기 국민을 대표하는 자, 지역이나 나라를 이끄는 자는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탐욕이 없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과오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또렷하게 밝히는 자여야 한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를 이렇게 정의해놓고 나면 더더욱 헷갈린다. 우리가 골라야 할 정답이 과연 선택지에 포함돼 있는지 고민은 하겠지만 과연 정답을 고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금 온갖 기사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정답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마치 ‘정답의 요소를 풍부하게 갖고 있으나 지나치게 정답의 요소들만 있어서 정답임을 의심하게 만드는’ 항목에 해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혹은 가혹하게 말하면 5지선다형에 이따금 보이는 ‘⑤위에는 정답 없음’이 정답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문득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붉은색은 본래 주색(朱色)이지만 자색(紫色)이 주색을 능가하고 저속한 정(鄭)나라 음악이 바른 아악(雅樂)을 흩트리듯 말솜씨 좋은 자가 사악함을 올바름이라 하여 마침내 나라가 뒤집어진다”라는 그 말씀. 이렇게 나라를 뒤집으려는 사람들이 후보로 나선다면 선택에서 젖혀놓으면 그만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사람들뿐이다 싶다면 큰일 중에 큰일이다.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해두는 것 - 아무래도 방법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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