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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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묵화

    • 입력 2021.01.06 00:00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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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서로 발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1921-1984):1951년「돌각담」등으로 작품활동*시집「십이음계」「북치는 소년」외.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황소처럼 세상이 온통 적막합니다. 골목마다 가게 문은 잠겨 있고 아이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공원 벤치에는 노인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길가는 사람들도 뜨문뜨문 합니다. 도시가 온통 성문을 잠근 듯 적막합니다. 

    그래도 새 해라고 태양은 둥그렇게 눈을 뜨고 떠 올랐습니다. 해도 쓸쓸한지 저 혼자 적막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토록 적막하게 갖힌 세상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혼자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면서 사는 일밖에는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나를 찾아 사유하고 대화하고 반성하면서 밖으로 끌어내어 형상화시켜 보는 일입니다. 자기만의 집을 짓는 일입니다. 마치 시인들이 언어의 집을 짓듯이,

    적막한 소처럼 적막한 이 시의 화자가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그윽히 바라보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듯, 우리도 각자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잘 살아냈다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적막하게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보물 같은, 햇덩이 같은 하얀 소 몇 마리쯤 가슴에 품어 안아 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한 해를 맞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가다가 너무 힘들면 소처럼 한 번 우렁차게 웡-하고 큰 울음소리를 내 보기도 하면서 이 힘든 코로나19라는 수난의 강을 건너야 할 것 같습니다. 소 같은 덕성과 인내와 상서로운 기운을 안고 적막하고 힘든 오늘의 이 강을 건너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서로 발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마음과 마음 위에 손을 얹어주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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