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사라져가는 말을 찾아서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사라져가는 말을 찾아서

    • 입력 2020.12.27 00:00
    • 기자명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농기구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걸 꼽으라면 아마 호미, 낫, 괭이, 쇠스랑, 삽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농업을 위주로 한 삶이었기에 다양한 농기구들이 존재한다. 그 중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 거릿대다. 거릿대는 삼지창처럼 생겼는데 쇠스랑과 단짝을 이룬다. 쇠스랑은 삼지창 모양의 거릿대를 기역자로 구부린 모양이다. 둘 다 뿌리작물을 캘 때 주로 사용한다. 당귀나 강활, 천궁, 황기 등등의 작물이 그것이다. 또 외양간에 쌓인 소똥을 치거나 두엄더미를 지게에 담을 때 사용하는 유용한 농기구다. 그런데 쇠스랑은 있는데 왜 거릿대란 말은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못하고 강원도 사투리로 취급받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거릿대를 대체할 표준어도 없으면서.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렇게 사라진 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표준어의 필요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표준어에 밀려난 수많은 사투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질 때가 많다. 더욱이 그 말들이 나의 소중한 기억들과 연결돼 있을 때는 더더욱 안타깝다. 어쩌겠는가. 그게 변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슬픔인 것을. 대관령 고향집을 찾아가 나이 드신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그 사라져가는 말들이 가끔씩 튀어나온다. 나는 그 즉시 휴대폰을 열고 메모장에 그 낱말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낱말을 오래 들여다본다. 어떤 이야기가 새어나오길 바라며.

    어린 시절 시골집에는 마당이 두 개 있었다. 우리는 뒷마당을 ‘된’이라 불렀다. 다른 지역에서는 ‘뒤란’이라고도 부른다. 앞마당이 개방된 공간이라면 된은 가족들만의 공간이었다. 굳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일은 된에서 했다. 된에는 빨랫줄이 있고 장독대와 절구통도 있었다. 폭설이 내린 어느 겨울엔 친척들이 산에서 잡아온 놀갱이(노루)를 된에서 몰래 잡아먹은 적도 있었다. 된은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이었기에 여름밤엔 커다란 고무구박에 물을 담아놓고 누나들이 목욕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아늑한 된에서 빨갛게 익은 앵두를 따먹곤 했었다. 

    앞마당 구석에는 정낭(변소)이 있었다. 두루마리휴지가 대중화되기 전 정낭에선 얇은 달력종이를 휴지 대신 썼다. 재래식 정낭이었기에 깨끗하다고 할 순 없었다. 볼일을 다 보면 작은 삽으로 재를 떠서 그 위에 솔솔 뿌렸는데 은근 재밌었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은 날의 정낭은 나의 어떤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나는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훌쩍거리며 볼일을 모두 본 뒤에도 앉아 있었는데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해졌다. 밤에는 성냥을 가져가 촛불을 켜놓고 볼일을 보았던 곳이 바로 정낭이었다.

    이 집에선 남자들의 수염을 쐬미라 불렀고 엄마는 아버지의 쐬미가 길어지면 쐬미 좀 깎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면도칼을 가죽에 썩썩 갈아서 비누거품이 묻어 있는 턱과 코밑의 쐬미를 깎았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아슬아슬한 면도 장면을 훔쳐보았다. 혹시라도 날카로운 면도날에 살이 베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나도 어른이 되어 턱에 쐬미가 나면 꼭 저렇게 해보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른이 되니 일회용 면도기의 세상이었다. 이발소에나 가야 그 면도칼을 볼 수 있었다.

    손톱깎이마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쓰미끼리라고 불렀던 손톱깎이가 혹시 있다 하더라도 거친 농사일로 손발톱이 두꺼워진 아버지에겐 소용없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새(가위)로 발톱과 손톱을 잘랐는데 내가 보기엔 참 무지막지했다. 직접 자를 수가 없어 엄마가 대신 잘랐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신기했다. 집안에서 가새의 쓰임새는 많고 많았다.

    벅(부엌)과 방, 마당을 수시로 들락거리느라 무척 바빴는데 당연히 행방을 감출 때도 많았다. 막상 필요할 때 없으면 우리 가족들은 가새를 찾아 온 집안을 뒤지는 소동을 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발톱을 자른 가새로 엄마가 김장김치를 자르는 걸 보고 나는 한동안 김치를 먹을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깨끗하게 씻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산골짜기 외딴 이 집에선 겨울에 토끼를 잡는 데 쓰이는 가느다란 철사로 만든 올가미를 옹누라 불렀다. 아버지는 눈이 그치면 미리 만들어놓은 옹누를 가지고 눈 덮인 산으로 들어갔는데 가끔 지겟가지에 토끼를 매단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 토끼를 손질해 도마에 올려놓고 식칼로 다지고 또 다졌다. 뼈와 함께 다진 토끼 고기를 두부와 섞어 반대기로 만들어 번철에다 지졌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술안주로 제격일 듯한데 나는 아직 술을 마실 나이가 아니었다. 토끼 반대기는 겨울날 집에 술손님이 찾아오면 내놓는 귀한 음석(음식)이었다. 

    춥고 눈이 퍼붓고 바람이 사나운 대관령의 겨울이지만 간혹 봄날처럼 따스한 날도 있었다. 그날이 장날과 겹치면 엄마는 장에 가서 겨울철 별미인 냉미리(양미리)와 도루매기(도루묵)를 사오곤 했다. 새끼줄로 엮은 냉미리는 보통 헛간 벽에다 걸어놓는데 당연히 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얼어붙은 개울에 안질뱅이(썰매)를 타러 갈 때면 나는 항상 냉미리와 성냥을 챙겨서 나갔다. 꽁꽁 얼어붙은 마을의 개울에서 안질뱅이를 타다가 지치면 아이들과 함께 얼음장 옆 장광(돌이 널려 있는 물 옆의 공터)에 황데기(일종의 모닥불)를 피웠다. 그 불에 몸을 녹이다가 알불이 나면 냉미리를 꺼내 구워먹었는데 그 맛을 대체 무엇에다 비교한단 말인가. 그렇게 배를 채운 뒤 다시 안질뱅이를 타고 얼음 위를 달렸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우리들은 부모님에게 배운 말들을 익히며 세상을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치는 짠지였고 입은 주댕이였다. 구린내는 쿤내였고 공책은 잭기장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우는 영깽이였고 그 흉내를 내는 여자아이는 곧장 별명이 영깽이가 됐다. 딴 짓을 하며 길을 가다 넘어지면 넹게배긴 거였고 그러면 친구들은 놀구느라(놀리느라) 히히덕거렸다. 눈은 눈까리였고 눈곱은 눈꾀비였다. 집집마다 개를 든내놓고(풀어놓고) 키운 터라 어느 날 기르는 개가 새끼를 낳으면 아비가 누구인지 추리하느라 즐거웠다. 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다 보면 가장 집요하고 사나운 벌이 땡삐(땅벌)였는데 마을엔 꼭 땡비란 별명을 가진 형이 한 명 있었다. 주말에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하고 비알밭(비탈밭)에서 일을 하면 매가리(힘)라곤 하나도 없이 시무룩하다가 일이 끝나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갈 땐 거의 태권소년 마루치나 다름없었다. 

    이 산골마을의 어른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표준말을 배우는 우리들에게 서랍은 빼다지, 먼지는 문주, 흉내는 숭내나 임내, 어린아이는 해다, 말벌은 바다리라고 가르쳐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뽕나무에서 떨어지면 고칠 약이 없다고 알려줬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뽕나무에 올라가 오디를 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면 누에가 먹을 뽕잎이 손상되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들은 겁이 나기는 했지만 뽕나무에 올라가는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과 입술이 퍼렇게 물들어야지만 비로소 낭구(나무)에서 내려왔다. 

    표준어를 배우기 전에 배운 말들의 대부분이 비록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못한 사투리가 되었기에 아쉬움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픈 것은 아니다. 그 말들은 내가 살던 산골짜기의 말이었고 그 말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살찌웠기 때문에 고마움이 먼저 앞선다. 빽빽한 표준어의 숲에서 살고 있지만 간혹 누군가 우연찮게 어린 시절의 말들을 불러오면 나는 시간이동을 한 것처럼 즐거워진다. 옛날의 어떤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르니 행복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나는 그것이 모어, 어머니의 말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말을 찾아 떠난다. 그게 인간의 운명인 듯하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