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청동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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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청동물고기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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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물고기
            -월롱산 일화逸話 5

                                     임 연 태 
     

    월롱산 용상사 명부전 추녀 끝
    청동물고기 허공에 입 벌리고 있는 까닭을
    누구에게 묻기도 쑥스럽고
    경전 뒤적여 찾아낼 재간도 없어
    그저 궁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터였는데
    보름달 환한 밤에 화들짝
    그 까닭 보았다.
     
    떵그렁 떨그렁 하염없던 풍경소리
    하늘을 돌고 돌다가
    여의주 같이 환한 달 떠오르자
    한입에 덥석 낚아채더니
    떨그렁 떨그렁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으로 흐르는 달빛에 풍경소리
     
    그 반짝이는 찰나의 법거량을
    도솔천 내원궁 미륵님이 알아보고
    씨~익 미소 지으니
    텅 빈 월롱산에 소쩍새만 소쩍소쩍
    농월弄月하는 밤이었다

    *임연태:2004년「유심」등단 *시집「청동물고기」외 다수. *현,금강(金剛)신문사편집주간.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선(禪)에서 깨달음의 경지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 것, 즉 ‘문성오도(聞聲悟道)’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모양을 보고 도(道)를 깨닫는 ‘견색명심(見色明心)’이 그것이다. 이런 오도송(悟道頌)은 북송시대의 소동파에서 시작된다. 그는 “계곡의 맑은 물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푸른 산 빛은 그대로 부처님의 몸이로다.(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豆非淸淨身)라고 깨달음의 경지를 설법하듯 시로 썼다.

    향엄지한(香嚴智閑)이란 선사는 밭을 매다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서산휴정(西山休靜)선사는 여행길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 도道를 깨우쳤다고 한다. 반면 ‘견색명심(見色明心)’은 영운지근(靈雲志勤)이란 선사가 어느 봄날 복사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은 새벽에 뜨는 별을 보고 대각(大覺)을 성취했다고 전해온다. 

    이 시의 화자는 ‘용상사’(경기도 파주 월롱면에 위치한 사찰)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청동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풍경을 보았나 보다. 이 물고기 풍경은 밤에도 자지 않고 수행하는 부처님, 혹은 불자들을 상징한다. 불심이 깊은 화자가 “청동 물고기가 허공에 입 벌리고 있는 까닭을” 모를 리 없다. 화자는 “보름달 환한 밤에 화들짝” 놀라듯 시적 발화의 한 경지를 깨달은 것이다. “떵그렁 떨그렁 하염없던 풍경 소리가/하늘을 돌고 돌다가/여의주 같이 환한 달 떠 오르자/ 한 입에 덥석 낚아채더니”와 같은 경지, 이것이 바로 화자가 깨달은 ‘견색명심’이다. ‘여의주’를 ‘달’로 은유한 수사적 기법은 불심을 지나 시적 승화의 절정이다.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무심으로 흐르는 달빛에 풍경소리” 같은 게송(偈頌)으로 이 시의 아니, 부처님의 세계,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세계로 정화된다.

    세한도 같이 청정하고 고적한 산사의 풍경이 어린다. 이 깊은 겨울, 겨울 산사는 얼마나 적막할까? 그래도 산사의 스님과 보살님들은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수행정진하며 산등성을 타고 오르는 여의주 같은 달을 “한 입에 덥석 낚아챌” 것이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찰나의 법거량”으로 침묵 같은 법열에 들 것이다. 무념무상의 한 점묘(點描), 묵화 같은 화폭이 어린다. 간간 어린 동자승의 발걸음도 두 손끝 호호 불며 대웅전 뒤편으로 총총 사라진다. 청정무구의 세계, 천년 고찰 “월롱산 용상사 명부전 추녀 끝”에서 울리는 ‘청동물고기 풍경 소리’가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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