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크리스마스 하루쯤은 행복하고 싶다면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성희의 뒤적뒤적] 크리스마스 하루쯤은 행복하고 싶다면

    • 입력 2020.12.14 00:00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가난하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상대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주머니는 텅 비었죠. 고심하던 두 사람은 저마다 묘안을 짜내 배우자에게 줄 선물을 마련합니다. 아내는 시곗줄, 남편은 헤어밴드를 준비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낡은 시곗줄이 마음에 걸렸고 남편은 아내의 풍성하고 멋진 머릿결을 돋보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막상 선물을 교환하던 이 부부, 깜짝 놀랍니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남편은 시계를 팔아 서로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기 때문이었죠.

    작가나 작품 이름은 모르더라도 이 줄거리 자체는 친숙할 겁니다. 동화며 만화 등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진 덕분이죠. 이건 미국 작가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소설입니다. 혹 기억하나요? 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처음 접했을 때의 뭉클한 감정과 더불어 피어나던 아릿한 아픔을. 전자는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감동에서, 후자는 그들이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그 작품처럼 크리스마스와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이되 따뜻하고 푸근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골랐습니다. 올 한 해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19, 없는 사람을 울리는 집값 등 탓에 ‘이생망’ ‘5포세대’ ‘헬조선’ 같은 말들이 난무했지만 일 년에 하루쯤은 행복해도 좋겠다 싶어서죠.

    정말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이번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선 ‘빛나는 밤’(햐쿠타 나오키 지음, 펭귄카페)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원제가 ‘성야(聖夜)의 선물’인 이 단편집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지는 5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각각의 주인공은 고단하거나 남루한 삶을 사는 여성들입니다. 성탄 전야에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게이코, 좋아하던 사람에게 차이고 병들고 외눈인 길고양이를 돌보며 사는 파견직 사원 마사코, 스무 살 젊은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뜨는 고아 출신의 마리코, 가방공장 재봉사인데 스튜어디스라 속인 채 사랑을 하다 떠나보낸 요리코, 첫사랑의 아이를 임신한 채 죽으려 하는 가즈코가 그들입니다.

    모두가 너그럽고 절로 여유로워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은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읽는 이의 가슴도 답답하죠. 그런데 기적이 찾아옵니다. 어쨌든 주인공들은 저마다 사랑을 만나거나 소원을 푸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노숙자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푼 덕에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만년필’을 받기도 하고, 고양이가 인연이 되어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사장의 프러포즈를 받는가 하면, 여분의 생명을 누리기도 하고, 넋두리 끝에 잃었던 사랑을 만나 오해를 풀기도 하죠.

    각 이야기에는 희한하게도 ‘악당’이 나오지 않습니다. 보통은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상대가 있어 줄거리를 끌어가며 긴장감을 높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야기들은 흡인력이 뛰어납니다. 반전은 O. 헨리만큼 극적이지 않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해서 끝에 가면 절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 단편소설들을 두고 문학성 운운 할지 모릅니다. 설사 그러면 어떻습니까. 비록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기적’ 또는 우연의 힘을 빌었지만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희망’을 품으면 안 되나요. 크리스마스만이라도 따뜻하고 편안한 이야기에 잠시 행복해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멋진 문학 아닐까요.
    작가는 일본의 지방 방송에서 일하는 방송작가인데 50세에 데뷔한 늦깎이로 작가입니다. 그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답니다. 이 작품집은 2007년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의미심장한 구절이나 멋진 표현은 눈에 띄지 않지만 읽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고 잠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에 국내에 소개되어 조금은 묵은 감이 있지만 말입니다.

    책 속 한 구절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벤저민 프랭클린)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스탕달)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