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숙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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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숙제를 끝냈다

    • 입력 2020.11.17 00:00
    • 수정 2020.12.08 10:32
    • 기자명 장희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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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자 수필가
    장희자 수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 밀어둔 숙제를 끝낸 것같이 가뿐하다. 30여년 전에 시신과 각막, 장기기증을 하였기에 죽은 다음 무덤을 만들지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만 하면 가볍게 이승을 떠날 수 있다.
     
    평생 시집살이했는데 죽어서까지 시집 조상 발치에 묻히거나 층층이 포개져 있는 봉안당은 싫다. 의과대학 교정에 있는 시신 위령비 뒷면에는 년도 별로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아이들이 찾기에 무리가 없겠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살아온 인생 못지않게 아름다운 생의 마무리도 중요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생을 이어가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시누가 모시고 있었다. 시누는 두려운 마음에 119를 불렀고, 그들은 지역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주었다.

    다음날 운명을 하셨으니 의사는 어떤 처치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의 원망을 들을까 봐, 의사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법 때문에? 어떤 이유인지 입원하는 환자가 하는 모든 검사를 다 하였다. 병원비가 아까워서만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도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면 지친다. 말씀은 못 하셔도 의식이 있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양쪽 팔과 손등, 심지어는 다리까지 혈관을 찾은 흔적이 퍼렇게 남아 있어, 마지막 가시는 길이 고통스러웠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환자는 고통스러운 삶보다는 영혼의 자유를 원할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의 집착과 체면 때문에 몸에 주렁주렁 줄을 달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환자는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연명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남은 가족은 피폐해지는데 어떤 환자가 힘들어하는 가족 앞에 불필요한 연명의료 행위를 원하겠는가!

    회생 불가하다는 의사의 판단이 있다 해도 가족 중 누가 치료를 중단하라 총대를 메려 하겠는가? 내 발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음식을 달게 삼키며, 꿈이 있어야 살아갈 이유가 된다.

    조상의 묘 돌보기와 제사 지내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어려운지 알기에 내 자식만큼은 편히 살게 해주고 싶다. 생각을 바꾸니 가족의 짐을 덜어준 것 같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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