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찰진 말 반죽으로 빚어낸 웃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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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찰진 말 반죽으로 빚어낸 웃픈 이야기

    • 입력 2020.11.16 00:01
    • 수정 2020.12.08 10:32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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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10년도 더 전에 본 영화 ‘황산벌’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다 잊었는데 영화 속에서 백제군사의 대화에선가 등장한 “거시기”를 두고 신라 첩자들이 무슨 뜻인지 놓고 설왕설래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온갖 오묘한 의미를 담아내는 ‘거시기’로 코믹한 장면을 연출해낸 감독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 싸울 때 통역을 뒀을까’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무튼 이번엔 그 사투리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사투리에 기댄, 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뭉클하고, 정겨우면서도 따가운 에세이집입니다. 충청도 출신의 시인 남덕현이 쓴 <한 치 앞도 모르면서>(빨간소금)이 이제 소개하려는 책입니다.
     
    먼저 웃어볼까요? 수덕사로 나들이 가려는 노인들이 역에서 벌이는 난리 장면입니다. 버스를 대절하는 대신 기차로 가자 고집했던 ‘성님’이 늦잠 자고는 늦게 오는 바람에 당초 예정했던 기차를 놓쳤답니다. 여기저기서 ‘성님’을 성토하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일찍 인날(일어날) 자신이 읎으믄  돈이래두 총무헌티 맽기든가! 그랬으믄 우덜이래두 먼저 갔을 거 아뉴? 안 그류?” “성님네 안방이 기차칸이유?…일찍 인날 자신이 읎으믄 돈이래도 총무헌티 맽기든가! 그랬으믄 우덜이래두 먼저 갔을 거 아뉴?”

    “빠스 대절했으믄 수덕사 가서 머리 깎구 여승 되구두 남을 시간이여!” “얼래? 여승이 뭐여? 부처 되구두 남을 시간인디!”

    그러자 죽을죄를 지은 ‘성님’이 쏟아지는 눈총을 외면한 채 홀론 먼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마디 한다. “아, 수덕사가 워디 가?”
     
    삶에서 터득한 지혜가 번득이는 따가운 대목도 보입니다. 선거철에 시골 다방에서 오가는 대화를 정리한 ‘시골평론’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친박, 반박, 비박을 논하던 어르신들 중 누가 묻습니다.
     
    “화투판이만 있구 정치판이는 읎는 게 있는디 뭔 중 아는감?”

    “뭔 박인디?” 

    “독박. 독박은 노상 궁민덜이 대신 쓰니께! 정치하는 것덜은 마냥 고, 궁민덜은 노상 독박!”

    그래도 선거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는 이 ‘평론가’가 일갈합니다.

    “츤하에 무식헌 소리 허구 있네. 허믄 뭐헌댜? 저거덜 뽑아놔봤자 다 비광이여, 비광! 서루 잡아먹을드끼 으르렁 그르렁 하는 것 같어두, 겔국 서루 붙어먹으야 삼 점 나는 비광들이라니께! 허, 쌍눔의 화투판!”

    이걸 보고 시골 촌로들의 농으로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신문이며 TV에 등장하는 미제 박사 교수, 무슨 정치연구소장들의 고담준론보다 우리 정치의 현실에 대한 훨씬 더 날카로운 비판 아닌가요? 이게 이미 흘러간 우리 옛 정치 풍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이가 누가 있을까요?

    무릎을 치며 곱씹게 되는 구절도 여럿 나옵니다. 현지 ‘취재’를 위해 시골에 머무는 지은이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이야기감을 찾다 돌아오니 집주인 어르신이 한마디 합니다.

    “원제 다 늙는댜? 늙으믄 살라구 용쓸 일두 읎구, 죽을라구 용쓸 일두 읎구 월매나 맴이 편헌디? 지비두 일찌감치 딴 디다 헛심 쓰지 말구 죽어라 늙기만 햐. 그게 남는겨.”

    나이 오십이라는 지은이에게 어르신이 “까마득허구먼!”이라 하자 “서둘러 늙어볼랍니다”라고 답하자 그 어르신 그럽니다. “그랴. 시상 이겨먹어볼라구 용쓰는 것두 한때여. 인자 것두 늙으믄 고만이니께.”

    글쎄요. 나이 들면서 욕심 버리고, 뒤에 오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는 버팀목 노릇이나 하려는 이들이 왜 그리 찾기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요. 

    필자는 충청도의 정서를, 충청도 사투리로 제대로 살려낸 이로 소설가 이문구를 제일로 칩니다. 한데 이 책을 보고나니 남덕현 시인을 그와 나란히 두렵니다. 그러면서 강원도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한 문학을 한 이는 누가 있을까 가만 생각해봅니다.

    몇 년 전인가 어떤 정신 나간 이들이 영어로 우리 국어로 하자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죠. 그런 허튼 소리를 한 이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싶습니다. 영어를 배우려 쓰는 헛심을 과학에, 경제에, 문학에 쏟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이 쑥 들어갈 겁니다. 사투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 말입니다.

    책 속 한 구절

    -“낭중이 정 띨라믄 지랄이여. 죽을 띠 심이 남어돌아서 한 번에 못 가구 욕보는 것보덤 더 대간헌게 사방이다 붙여논 정 띠가 가는겨. 쌍눔의 거 도배풀두 아니구 뽄드두 아니구 뭘루다 처발랐는가 띨라믄 보통 지랄이간디! 깨깟허게 띠지기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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