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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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느티나무

    • 입력 2020.10.28 00:00
    • 수정 2020.12.08 11:03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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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
                     
                                                      윤효
     
    잠시 앉아 허리를 펴거나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던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섰다.
     
    준공식 날,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왔다.
     
    오색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었다.
     
    동네가 훤해졌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다.
     
    들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들도 음매음매 목을 놓아 울었다.

    *윤효(본명-창식):1984년『현대문학』등단. 시집「참말」「배꼽」외 다수. 현)한국시인협회부회장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우리의 고유한 것, 전통적이고 정서적인 것이 사라져 가는, 혹은 잃어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심상을 그려낸 시다. 일찍이 이산(怡山)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비둘기들이 각종 개발과 자연 파괴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문명비판적인 시로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올해 3월 초, 나는 긴 겨울잠에서 풀려나 이곳 춘천 약사천으로 걷기운동을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강둑이 벌겋게 민둥산처럼 벗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민둥산 정도가 아니라, 아예 큰 나무 몇 그루만 군데군데 남겨 놓고 싹 뿌리째 뽑아버렸다. 더구나 10년 이상을 키웠을 춘천의 시화(市花) 개나리뿌리까지 다 뽑혀져 있었다. 이른 봄인데도 풀 한 포기 올라오지 않았다. 풀숲에서 재잘거리던 물새들도 집을 잃고 어디론가 다 날아가고, 새들의 모습은커녕 그 목소리 한 소절 들을 수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 후 나는 그 산책길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보기만 하면 삭막해진 아니, 폐허가 된 강둑길이 나에게 화(怒)만 불러일으켰다. 

    세간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기관에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그 기관 준공식 때 심었던 ‘기념식수’를 이리 옮겨라, 저리 옮겨라, 하는 바람에 결국 그 나무가 죽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수장이 바뀔 때마다 뜯어고치길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멀쩡한 것을 뜯어 없애고 그 자리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심리’ 말이다. 

    이 시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그런 현실을 비유적으로 풍자한 시다. “허리를 펴고 앉아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길 안내이자 마을의 수호신 같기도 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선” 것이다. “준공식 날은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왔다.” 우리가 흔히 보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면에는 ‘내가 그 자리(위치)에 있을 때 해 놓았다’는 과시가 은근히 깔려 냄새를 풍긴다.
      
    한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느티나무’는 사라졌지만 “동네가 환해졌다고 했다.” 그 환한 얼굴 속에는 군수나 면장, 국회의원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은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어제도 오늘도---, 

    그러나 정작 마을 사람들 혹은 군민이나 시민들이 잃은 것은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이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듯이 혹은 “들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들도 음매 음매 목을 놓고 울었”듯이, 동네 사람들은 마음의 터전을 잃은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그리고 아름다운 정서를 잃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허(虛)하다. ‘길’을 잃고 ‘동네’를 잃고 정서를 잃고 떠도는 현대인들!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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