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분의 글소리] 은수천(銀水川)과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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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분의 글소리] 은수천(銀水川)과 제비꽃

    김금분 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 입력 2020.01.06 14:49
    • 수정 2020.01.14 08:38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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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분 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금분 전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졸졸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은수천(銀水川)이라는 맑은 이름 옆으로 걷는 발걸음도 그 흐름을 닮아간다. 김유정역 뒤편 작은 둔덕길을 따라가면 겨울 개천이 모래 얼음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볼 수 있다.

    야트막한 앞산이 있어 새소리도 풍경이 된다. 투명한 겨울 햇살이 얼굴에 부딪힌다. 속임수 없이 마음을 내어놓는 자연처럼 가슴을 펴고 바람을 맞는다. 이 길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호젓함은 덤으로 얻는다.

    실레마을을 아끼는 동네 분이 안내해 준 이후, 가끔 혼자길로 정해둔 곳이기도 하다. 도시 근교 삼십 여분 남짓 산보에 불과하지만, 이때의 기분은 무심의 시공간이 된다.

    기슭에 맞닿은 물줄기는 얼음으로 병풍을 치고, 돌 틈 사이로 흐르는 투명한 물길은 마음속 번잡함을 밀어내기에 적당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정초의 발길이다.

    유난히 소리에 시달린 한 해를 보내고 오는 길이다. 쏟아지는 뉴스와 분열된 사고에 포획당했던 시간, 개인의 자의식은 집단에 잠식돼 벙어리 냉가슴 지천이었다. 상대를 향해 비판하고 지적하는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자기 불안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모순에 시달리기도 했다.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들의 홍수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으며 시간 낭비도 경험하였다. 방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존감은 울그락 불그락 요동을 칠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국가 문제만은 아니다. 개인이 살아가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도 분열과 갈등은 끝이 없다. 축소판이다. 서로 시대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슷한 판도로 반목이 이어진다. 싸우면서 만나고 싸우려고도 만난다.

    다툼이 대화가 될 정도로 살벌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주 헤어지지도 못한다. 현대인의 불안 심리는 집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어느 사회 지도층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모임은 만나기만 하면 언쟁이 일어나고, 돌아서면 상대방 비방에 열을 올린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어봤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면서 왜 계속 만나시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적막했다. 그나마 없으면 정보도 끊기고 외롭고 심심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한 단면이기는 하지만, 이 시대 씁쓸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보다 친화적이고 발전적인 모임이 훨씬 많다. 넓고 좁은 하천 폭을 따라 물길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졸졸졸졸 기다려주기도 하고 다정하게 웅덩이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쯤에 우리에게도 삶의 성찰을 통해 소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모이지 않을까. 겨울 은수천 물소리처럼 잔잔하고 냉철한 목청을 회복하고 싶다. 변화의 다른 이름으로 반성과 동력을 얻을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쳐있는 무력감을 은수천에 흘려보내고, 새로운 존재로 쌈빡하게 피어나기를 빈다. 은모래를 품은 개울가 옆으로 봄이면 제비꽃이 필 터이다. 새해를 맞아 치유의 씨앗으로 황동규 시인의 시를 둔덕에 뿌린다.
     
         한 놈은 꽃잎 하나가 크고
         또 한 놈은 꽃받침이 약간 이지러졌다

         키도 제각기 달라
         거의 땅에 붙어있는 놈도 있다

         어느 누구도 옆 놈 모습 닮으려
         애쓴 흔적 보이지 않는구나

           - 황동규 시 <  제비꽃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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