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사진 한 장에서 길어낸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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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사진 한 장에서 길어낸 지혜

    • 입력 2020.10.19 00:01
    • 수정 2020.12.08 11:41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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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두 어린 소녀가 주택가 골목길에서 훌라후프를 하고 있다. 저녁 무렵 역광이어서 소녀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대신 긴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중 연두색 훌라후프를 돌리는 소녀가 마침 두 발을 모은 채 공중에 떴다. 뭐가 그리 신나는 걸까.

    이 장면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을 두고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승위란 이가 스웨덴 생활 경험을 정리한 책의 한 대목이 이 사진과 맞물렸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의 수업 참관을 했는데 막내가 선생님 질문에 용감하게 번쩍 손을 들고, 천연덕스럽게 ‘틀린’ 대답을 하더란다. 엄마는 손을 든 것도 놀랍지만 틀린 답을 크게 외쳐 놓고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에 더 놀랐단다.

    이건 『박상익의 포토인문학』(정한책방)의 첫머리에 실린 ‘공중부양 소녀’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글은 “아이들은 틈만 나면 하늘로 점프한다. 폴짝 뛰어올라 한껏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 한다…사진가가 아이의 공중부양 순간을 말없이 기다리다가 순간 포착하듯이 학교와 사회는 그들의 재능과 미덕이 드러나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다가 찾아내 격려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라고 마무리한다.

    그렇다. 이 책은 사진과, 그에 관련된 글을 엮었으니 사진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다. 한데  멋진 풍경, 극적인 순간을 담아낸 사진을 화두로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느 포토에세이집과는 결이 다르다. 대신 사진을 화두로 영화, 책, 역사를 이야기하며 생각거리를 전한다. 서양사학자이자 뛰어난 번역가인 지은이만이 쓸 수 있는 ‘포토인문학’이다.

    길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사진을 두고는 영국 하원 의사당 안에 그어진 빨간색의 두 줄 ‘소드 라인(Sword Line)’ 이야기를 전한다. 의회정치 초기, 의원들 간의 칼부림을 막기 위해 여야 의석 사이에 긴 칼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2.5미터 너비의 검선(劍線)를 그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두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상대를 덮칠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소드 라인’을 넘지 않고 슬그머니 제 갈 길로 갔다며 “21세기에 동물만도 못한 국회는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18세기 유럽에서는 하층민들의 독서량 증가가 가져올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든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영국 귀족 청년들이 초급 장교로 전방 근무를 자원하는 바람에 여러 귀족 가문의 대가 끊기는가 하면 국가 엘리트의 손실을 우려한 영국 정부가 후방 근무를 호소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가하면 “나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 훈시하는 고교 선배 육군대장을 회고하며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하는 글에 물린 사진에는 무릎을 치게 된다.

    지은이가 학교를 오가며 찍은 일상의 사진은 인쇄가 허술한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각각에 붙은 글이, 그 뜻이 빛나니 충분히 음미할 만한 책이다.

    책 속 한 구절

    -줄무늬가 서양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중반 가르멜수도회 수도사들이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파리에 들어가면서였다…긍정적 의미의 줄무늬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더불어 확산되기 시작했다.

    -“항상 여론을 좇아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며, 또한 고독한 가운데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대중의 한가운데 살면서도 고독에서 지닐 수 있는 독립성을 좋은 기분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바보들은 젊은 날의 악독과 결점을 노년까지 그대로 끌고 간다.”

    -나이를 더 먹으면 많은 사람이 대체로 거미형이 된다. 젊은 날 손에 넣은 지식이나 돈, 지위를 거미줄처럼 늘어놓고 거기에 걸리는 것을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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