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 나훈아 공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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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나훈아 공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 입력 2020.10.07 09:35
    • 수정 2020.12.08 11:46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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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이번 추석 연휴 전국민적 화제를 만들어낸 이는 나훈아였다. 그는 명절 연휴 첫날인 9월 30일 저녁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안방극장을 뜨거운 감동으로 물들였다. 공연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나훈아 공연을 화제로 삼았다. 방송내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장식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30일 서울 공연의 서울 지방 시청률은 무려 30.3%를 기록했다. 지난 3일 비하인드 영상을 포함해 방송된 KBS 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편도 18.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드러난 나훈아 무대의 강점은 2시간 이상을 쉴새 없이 불러도 히트곡이 계속 나오는 가수라는 점, 이런 노래들을 힘을 빼고 부르는 연륜, 철저한 몸관리로 체력과 뚝심을 유지한 점, 노래 사이사이에 인생에 대한 인문학적인 통찰이 깃든 코멘트를 한 점 등이다.
     
    나훈아는 코로나19로 힘들어진 국민들을 위해 노개런터로 출연했다. 이날 나훈아는 2시간30분동안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언택트 공연을 보고 있는 전세계 동포 시청자와 소통했다. 온라인 관객은 세계 각국에 거주하는 동포 팬들을 대상으로 미리 신청받은 1000명이었다.

    ‘74세 청년’ 나훈아는 연예인의 값어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다는 걸 잘 보여주었다. 그는 이번 공연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신비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담고있다. 적어도 나훈아에게서 존재감, 스타성, 아우라, 카리스마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은 얻을 수 있다.

     

    우선, 여기저기 불러준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건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연예 활동 초기에는 불러주는 곳마다 가야겠지만, 따지지 않고 여기저기 출연하다가는 어느 순간 불러주지 않는다. 제작자는 자신의 콘텐츠에서 연예인을 필요할 때까지만 소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작(多作)을 해도 쓰임새가 확실히 있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스스로 필요있는 캐릭터가 되면 상관없지만, 별 소용이 없는 곳에 자꾸 나오는 것은 마이너스다. 나훈아는 북한과 삼성에서 불러도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으면 안갔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연예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조금 비싸게 굴 필요가 있다. 이는 까다롭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철저하다는 의미와 더 가깝다. 자주 공연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열면 무대, 음악, 기획 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가수 중에는 콘서트를 자주 열지는 않지만 한번 열면 팬들이 티켓팅을 하려고 학수고대하는 가수가 있다. 김동률, 이승환, 박효신 등이다. 이들은 무대에 열정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입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보장돼 팬들이 믿고 보게 된다. 가수의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이런 것들로 만들어진다.
     
    나훈아는 그런 가수들중에서 대표적인 존재다. 콘서트를 3년만에 한 번 여는 게 아니라, 10년, 15년에 한 번 연다. 이 한 번의 공연으로 10년간 그의 이미지와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고 소비된다.
     
    나훈아는 카리스마는 엄청나지만, 공연에서 관객(언택트)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극히 서민적이다. 소통의 대가답다. “뭐가 비야(보여야) 하지” “천지 삐까리(많다는 부산 사투리)인기라” 등의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친서민 성향을 보인다.

     

     
    나훈아는 원래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내용의 트로트를 많이 불렀다. 그의 노래중 대표적인 키워드인 ‘고향’은 70년대 개발독재시대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상경해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던 누나들의 심금을 자극했다.
     
    공연의 질을 결정하는 첫번째 요인은 가수의 노래다. 하지만 노래와 노래 사이의 토크도 중요하다. 노래와 노래의 이음새 역할을 한다. 나훈아의 멘트는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사람 사는 얘기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이야기,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이 깃든 코멘트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개성적이고 함축적이다.
     
    “세월에 끌려가면 안되고 우리가 멱살 잡고 하고싶은 것 하며 끌고가야 한다” “세월이 빨리 안가게 하려면 안해본 것도 해보는 것이다” 등 인생선배로서 했던 말에는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이렇게 2시간 반 동안의 공연으로 ‘나훈아 유니버스’가 구축됐다. 아버지의 묘소앞에서 먼저가본 저세상과 세월의 힘듬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묻는다. 요즘 테스형, 맑스형 등을 부르는 게 유행이다. 다음 번에 공연할 때는 “테스 형 하고 불렀더니 저를 나크라테스라고 하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BTS가 노래 만이 아니라 가사와 SNS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던져 ‘BTS 유니버스(세계관)’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앞서가는 가수라고 보면 나훈아는 이미 그런 세계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다.
     
    혹자는 나훈아 신드롬을 어른 부재 시대의 어른, 권위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도 분석했다.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드문 현실이라 그럴만하다.

     

    나훈아는 정치권까지 많은 통찰을 제공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인생의 고단함이 절절히 녹아들어 있는 그의 노래는 제 인생의 순간들을 언제나 함께했고, 그는 여전히 저의 우상”이라고 SNS에 올렸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0년 가까이 정치를 하고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나훈아는 트로트계에서는 몇 안되는 싱어송라이터였다. 트로트 가수중에 직접 음악을 만드는 가수는 설운도, 심수봉 등 몇 명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나훈아는 대선배다. ‘잡초’ ‘울긴 왜 울어’ ‘무시로’ ‘갈무리’ ‘영영’ ‘홍시’ 등을 직접 작곡했다.
     
    나훈아는 전성기가 지나 활동이 뜸해졌음에도 작곡 능력을 지녀 아티스트로서의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또한, 남진이 만능 엔터테이너 기질을 보인 반면, 나훈아는 일반 방송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는 신비주의 수법을 썼다. 그 결과 나훈아는 라이브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의 공연에는 항상 관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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